‘오아시스’ 강경헌 “‘이런 악역은 강경헌이야!’라는 말 들으면 성공한 거죠”[스경X인터뷰]

하경헌 기자 2023. 4. 2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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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드라마 ‘오아시스’에서 강여진 역을 연기한 배우 강경헌. 사진 서율커뮤니케이션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오아시스’는 어린 시절 절친하게 지냈지만, 어느 순간 뒤틀린 청춘들의 운명을 다룬다. 주인공 이두학(장동윤)은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했지만, 집안에서 주인님처럼 모시던 집의 아들 최철웅(추영우)이 실수로 사람을 죽이면서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그 상황에서 두학의 추락을 설계했던 사람이 철웅의 엄마 강여진이었다. 강여진은 ‘우리 집이 권세가 생기면 두학을 꺼내줄 테니 당장 있을 선거에의 영향을 없애게 두학이 대신 교도소에 들어갈 것’을 두학의 아버지 이중호(김명수)에게 권한다. 그다음부터 두학은 깡패가 되고 삼류인생을 산다.

어떻게 자기 자식이 귀하지만 남의 자식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 있을까. 쉽게 납득가지 않는 상황이지만 강여진 역 강경헌은 빗속에서 이중호에게 절규하게 매달리는 방식으로 이를 설득한다. 강경헌은 최근 방송됐던 드라마 ‘환혼’에 이어서 또 악역을 연기했다.

KBS2 드라마 ‘오아시스’에서 강여진 역을 연기한 배우 강경헌. 사진 서율커뮤니케이션



“‘자기 자식도 아닌데 왜 저러냐’ ‘집착이다’ ‘이용하는 거다’ ‘사랑이 아니다’라고들 말씀하시는데. 여진은 정말로 그게 아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이었어요. 여진의 삶은 특권층이었고, 국회의원의 자녀로 독립운동가의 집에 시집을 갔는데 아이를 못 낳는 걸 알고 데려다 키웠지만, 남편이 선거하다 죽고 재산도 잃었어요. 여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들이라도 나락에 넣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겠죠.”

악역으로서 강여진은 독특했다. 보통의 악역이 잔뜩 올라간 눈썹과 교활한 표정으로 악행을 치르는 것과 달리 우아함이 넘쳤다. 미소가 많았고, 다정했다. 정말 자신이 하는 일이 악행인지 모르는 것 같은 순수함이 드러났다. 이는 강경헌의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납득이 될 수 있는 지점이었다.

“다른 역할을 할 때는 많은 분들이 욕도 하시면서 응원도 하셨는데, 이번에는 너무 미워하시는 거예요. 여진이 그냥 악역을 하고 악행을 했다면 안 그랬을 텐데, 너무 이중적인 사람이었던 거죠. 흐트러지지 않은 여진의 삶, 그 베일에 싸인 느낌이 더욱 사악했던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도 보통 악역을 할 때 응원을 해주시는데, 이번 연기를 할 때는 ‘너 어쩌려고 그러냐 너무 무섭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KBS2 드라마 ‘오아시스’에서 강여진 역을 연기한 배우 강경헌 출연장면. 사진 KBS



악행을 일삼았지만 극 중 황충성(전노민)과 강여진이 벌이는 ‘어른 멜로’는 악역으로 날카로워진 신경을 쓰다듬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다. 제복을 입은 전노민의 모습은 그 마음을 떠나 외적으로는 멋진 중년 신사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강경헌은 그와의 연기로 ‘멜로’에 대한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실물이 너무 좋으셔서 키아누 리브스나 양조위의 모습이 보였어요. 여진으로서 충성을 좋아하기에 딱 좋았죠. 적당한 중후함과 달달함 그리고 카리스마. 원래 노민 선배님은 재미있는 분이에요. 그래서 마지막에 죽기 전 대사를 하실 때 실제로 눈물이 터졌죠. 진짜 다음 작품에는 선배님과 어른들의 로맨스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나요.”

1996년 KBS 공채 18기 탤런트로 데뷔한 강경헌은 2018년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안방극장으로 종횡무진하며 활약하는 배우였다. 그의 다른 면을 끌어내 준 것은 SBS 예능 ‘불타는 청춘’이었다. 왕년의 스타들의 MT를 다뤘던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많은 언니, 오빠, 친구들과 만남은 그의 연예계 생활에도 큰 전환점이 된다.

KBS2 드라마 ‘오아시스’에서 강여진 역을 연기한 배우 강경헌 출연장면. 사진 KBS



“사실 나이도 어렸고, 시대를 아울렀던 정상급에 있던 분들이 추억을 이야기하는 곳이잖아요. 저는 정상을 찍은 것도 아니었는데, 두려운 마음이 들었죠. 하지만 다들 편하게 해주시고 하니 점점 까먹게 되는 거예요. 자꾸 꾸미지 않는 모습이 담기고 시청자분들이 재밌어해 주시는 거죠. 멀리 있는 배우가 아니라 친근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 ‘불타는 청춘’의 덕이 큰 것 같아요.”

그즈음부터 그가 연기했던 배역은 ‘구해줘’ 이지희나 ‘배가본드’ 오상미, ‘닥터 로이어’ 윤미진, ‘환혼’의 서하선 등 악역의 결이 있는 인물이 많았다. 강경헌의 이미지는 고전적이고 세련미가 혼재된 인물이었지만 연출자들은 그에게서 악의 기운을 더욱 찾아냈다. 배우로서 악역을 흔하게 한다는 건 배역의 편중이라는 점에서 어려운 결정이지만 강경헌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선택받는 입장이잖아요. 다른 연기를 하고 싶지만, 악역이 싫지 않아요. 다들 비슷한 역할로 보시겠지만 인물에 다가가는 접근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단, 보시는 분들이 지겹지 않으실까(웃음) 걱정하는 것뿐이에요. 아직 목표는 있죠. 전 국민이 ‘이런 악역은 역시 강경헌이야!’라고 하신다면 제 연기는 성공한 거예요. 그때 다른 역을 찾으면 되고요.”

KBS2 드라마 ‘오아시스’에서 강여진 역을 연기한 배우 강경헌. 사진 서율커뮤니케이션



늘 머리와 화장을 갖추고 하는 배역이 갑갑해 ‘오아시스’ 마지막에도 노메이크업을 택했다. 이처럼 그도 화장 하나도 안 하고 머리도 안 감고, 안 빤 옷을 입고서 속 시원하게 사이다 멘트를 날리는 여장부를 꿈꾼다. 악역도 괜찮다. 자유롭게, 그의 털털함과 재치를 살릴 수 있는 역할이면 꼭 좋겠다.

“요즘 시대극이 없었잖아요. 젊은 세대에게는 신기함을, 중년에게는 추억을 드려서 좋았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흘러도 그렇게 많은 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연기를 하고 싶어요.”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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