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페호의 넘치는 ‘스웩’ “나는 필리핀 남자배구의 아이콘이다”

남정훈 2023. 4. 28. 07: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5일부터 27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린 2023 한국배구연맹(KOVO) 남자부 아시아쿼터 트라이아웃 드래프트에서 대한항공의 목표는 분명했다. 일본 파나소닉에서 뛰는 리베로 이가 료헤이(일본)를 뽑는 것이었다. 24명을 8명씩 세 개조로 나누어 2일차 오전에 열렸던 감독과의 면담 시간에도 대한항공의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료헤이를 따로 지목해 일본 리그의 리베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볼 정도로 대놓고 관심을 표명했다.

료헤이를 노리는 팀은 대한항공만 있는 게 아니었다. 1998년생 이지석과 2001년생 장지원으로 지난 시즌 리베로를 운영했던 한국전력도 1994년생으로 베테랑 반열에 들어선 료헤이를 뽑아 리베로 포지션을 보강하고자 했다. 이번 트라이아웃에서 대한항공과 한국전력이 먼저 지명권이 나오는 팀이 료헤이를 뽑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27일 오후 열린 드래프트 순번 추첨 결과, 한국전력 2순위, 대한항공 3순위가 배당됐다. 1순위 지명권을 갖게 된 삼성화재가 에디(몽골)를 뽑았고, 한국전력의 차례. 권영민 감독은 고민 없이 료헤이를 지명했다.

이어진 대한항공의 순서. 전체 1순위 후보로도 거론된 미들 블로커 바야르사이한(몽골)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틸리카이넨 감독의 선택은 아웃사이드 히터 마크 에스페호(필리핀)이었다. 에스페호가 이번 트라이아웃 참가자 중 리시브 능력에서 가장 안정된 것으로 평가를 받으며 7명 안에 들 것으로 예상되긴 했지만, 에디와 바야르사이한, 료헤이에 이번 트라이아웃 최장신(203cm) 미들 블로커 차이 페이창(대만)이 ‘빅4’로 평가 받아 4순위 이후에 뽑힐 것으로 전망됐기에 다소 의외의 선택이었다. 정지석-곽승석으로 이어지는 리시브 라인을 보유한 대한항공이 남자부 7개 구단 통틀어 아웃사이드 히터 선수층은 가장 두터웠기에 더욱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선택이기도 했다.

드래프트를 마치고 진행된 에스페호와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대한항공이 이날 보인 의외의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들게 했다. 그만큼 에스페호는 자신의 배구에 대해, 그리고 필리핀 배구를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에스페호는 “드래프트가 시작되면서 너무 긴장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대한항공이 디펜딩 챔피언 팀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대한항공이 뽑아줘 영광스럽고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에스페호에게 ‘대한항공의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인 정지석과 곽승석은 국가대표에서도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이다. 이런 선수들과 경쟁해야 한다’라고 묻자 그는 “나 역시 필리핀 국가대표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정지석과는 예전에 23세이 이하 대표팀에서 미얀마에서 시합한 적도 있다. 예전엔 코트에서 바라보고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이제는 한 팀에서 뛰게 됐다. 정말 흥분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영어가 공용어이기도 하다. 에스페호 역시 영어에 능통해 틸리카이넨 감독과의 소통에는 문제가 없는 것도 그가 대한항공 배구에 적응하는 데 한층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에스페호는 “팀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겠다”라며 의욕을 불태웠다.

에스페호의 인터뷰 내내 ‘스웩’이라는 단어가 떠올렸다.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에 대해서도 아웃사이드 히터의 제1 덕목인 리시브를 꼽았다. 에스페호는 “공격이나 블로킹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리시브에서 다른 부분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필리핀하면 먼저 떠오르는 스포츠는 역시 농구다. 필리핀 출신의 조던 클락슨(유타 재즈)은 NBA에서도 정상급 슈팅가드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에스페호 역시 “필리핀에서 메인 스포츠는 농구이며 두 번째가 여자배구”라며 그 사실을 인정했다. 에스페호도 시작은 농구였고 고교 시절까진 농구와 배구를 병행했지만, 왼손 부상을 당해 배구로 전향한 사연이 있다.

에스페호의 자부심은 남달랐다. 그는 “나는 필리핀 남자배구의 아이콘이라고 할 정도의 선수다. 필리핀 남자배구의 발전을 이끄는 도구가 되겠다. 필리핀에도 배구 잘하는 남자 선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나는 항상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포부를 밝혔다.

이제 갓 소속팀이 된 대한항공에 대한 ‘RESPECT’를 드러낼 정도로 에스페호는 인터뷰 센스도 남달랐다. ‘대한항공 로고나 유니폼이 마음에 드나’라는 질문에 에스페호는 “유니폼에 새겨진 별 4개가 무겁게 느껴진다”라고 답했다.

자칭 필리핀 남자배구의 아이콘이라는 에스페호. 과연 정지석-곽승석 듀오에 정한용까지 포진해있는 대한항공 아웃사이드 히터진에서 에스페호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만약 다가올 2023∼2024시즌에 그의 존재감이 뚜렷해진다는 것은 대한항공의 통합 4연패가 한층 더 가까워진다는 얘기다.

제주=남정훈 기자 che@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