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F4+L1, 그들의 시계(視界)
[아이뉴스24 김병수 기자] 집값이 좀 내려가면 마냥 좋을 줄 알았습니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서민의 얼굴에 필 봄꽃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다는 대한민국 특허상품 '전세'라는 제도를 이렇게 사기꾼들이 망가뜨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전세의 배신입니다.
사실 전세는 서민들이 내 집을 마련하기 전 대략 십여 년간을 버티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전세보증금이라는 큰 목돈이 필요하지만, 매달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월세보다는 낫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임차인은 금융권에서 대출받아 이자를 내면서 십수 년의 세월을 버팁니다. 청약 당첨을 위해 열심히 발품도 팝니다. 운이 좀 따라주면 조금 더 빨리 내 집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선 전 문재인 정부와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문 정부도 초기부터 서민의 최대 고통 사항인 집값 문제를 풀겠다며 강하게 밀어붙였죠. 임대차 3법으로 불리는 조치였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순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전세보증금의 일시적 인상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임대인의 보증금 인상을 아예 법으로 틀어막아 못 올리게 하면, 임차인들이 살기가 좀 나아질 것이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임차인들은 다음 전세 연장 때 한꺼번에 보증금이 올라 다른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습니다. 그렇게 빠르게 늘어난 전세 교체 물량과 맞물린 틈새를 교묘히 그리고 제대로 활용한 것이 이번 전세 사기 대란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우리 경제 정책은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도미노 금리 인상에 맞닥뜨린 현실을 수습하는 데만도 숨을 헐떡거립니다. 'F4'라는 것이 이를 잘 대변합니다. 금융을 지칭하는 파이낸스(Finance)의 머리글자를 따고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4개 조직의 수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F4는 일요일마다 별도의 비공개 모임을 하면서 경제 현안에 머리를 맞댄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앞둔 현시점에선 L1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영문 이름 중 국토·주택을 말하는 Land의 첫 알파벳을 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칭합니다. 전세 사기 사건으로 나라 전체 이슈가 손바뀜한 덕(?)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전 세계가 금리 인상 기조가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국면이어서 F4도 잠시 한숨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는 듯합니다. 얼마 전 F4의 미세한 이견이 노출된 적이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민간은행 대출 금리 인하 압박과 관련한 얘깁니다. 이 총재는 시장금리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면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고, 이 원장은 전체적으로 조금 더 대출금리가 내려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이 총재로선 기준금리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또는 통화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조치로 받아들였을 가능성 있습니다. 아마도 이 원장은 윤 정부의 지지도가 계속 바닥을 헤매고 있으니,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금융시장 사람들의 촌평입니다. 물론 둘은 이견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L1도 여론의 등살에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서민의 고충은 안타깝지만, 어떻게 정부가 나서 사기 피해를 해결하겠냐던 당당한 입장에서 한발 크게 물러섰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지렛대로 사기 피해 주택의 공매 임대가 그렇습니다. 아마도 들불처럼 번진 피해 호소에 윤 대통령과 집권당의 지지율 등을 고려한 결단으로 풀이합니다.
이런 결정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올여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총선 국면에 진입합니다. F4+L1의 5명 중 3명이 총선을 위해 자리를 바꿀 가능성이 큽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말합니다.
경제 논리보단 정치 논리에 정책이 끌려갈 가능성은 점점 커집니다. 또 다른 더 큰 위기가 어느 순간 성큼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시계(視界)가 점점 좁아지는 듯해서 그렇습니다.
/김병수 기자(bskim@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럼프, 백악관 대변인에 '27세 레빗' 발탁…역대 최연소
- 한동훈 "민주당, 판사 겁박…'위증교사 형량' 무거울 것"
- '킥보드 가격' 유치원 교사, 주먹으로 11명 더 때렸다
- 우크라, 러시아 반격용 '살상 드론' 대량 투입 임박
- 尹 "러북 대응 한중 협력 기대"…시진핑 "평화적 해결 희망"
- '온몸에 문신'·'백신 음모론'…논란 계속되는 '트럼프 정부' 지명자들
- '진짜 막걸리'의 기준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전 야구선수 정수근, '술자리 폭행' 이어 음주운전 혐의도 기소
- 尹-시진핑, '한중FTA 후속협상' 가속화 합의…방한·방중 제안도
- "상생 아닌 명분만 준 셈"…자영업은 '부글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