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산업리포트] ‘스페이스 버블’ 터진다… “한국, 뉴스페이스 환상 버리고 잘하는 것 챙겨야”

송복규 기자 2023. 4. 28.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재미 우주 전문가 제임스 황 박사 인터뷰
버진 오빗, 올드스페이스 리더 선임해 실행력 부족
‘스페이스 버블’ 금융권이 주도, 옥석 가리기 시작
“뉴스페이스는 자생적… 한국, 원천 기술부터 잡아야”
버진오빗(Virgin Orbit)이 보잉 747을 개조한 '우주소녀 747'이 이륙하는 모습. /Virgin Orbit

위험을 감수한 도전 정신과 혁신 기술로 우주산업에 새로운 훈풍을 불어넣은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New Space)’가 도전대에 섰다. 상업 우주시대에 도전하던 우주 벤처들이 자금난으로 파산하거나 기존 계획을 수정하면서 ‘버블’이 터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애초에 뉴스페이스 시장 규모가 너무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영국의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설립한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버진오빗(Virgin Orbit)이 파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버진오빗은 지속적인 자금난에 시달리며 직원들에게 무급휴가와 해고를 통지했지만, 결국 지난 4일(현지 시각) 파산했다. 회사의 대주주인 브랜슨 회장이 자금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서를 제출했다.

또 다른 미국 스타트업 아스트라 스페이스(Astra Space)는 로켓 발사를 한동안 중단하면서, 재정 손실에 허덕이고 있다. 저조한 성과와 불확실한 자금 조달로 주가는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서 이른바 ‘센트주’가 됐다. 2021년 7월 상장 직후에는 15달러를 넘기기도 했지만 불과 2년도 안 돼서 추락했다.

민간 주도로 우주 개발에 나서는 뉴스페이스는 불가능한 것일까. 미국에서 우주 분야 자문회사 쇼크프리딕션테크놀러지스를 운영하고 있는 제임스 황 박사는 “뉴스페이스는 온다”면서도 “지금은 너무 과장됐다”고 경고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황 박사는 미국 캔자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12년간 엔지니어로 근무한 우주 전문가다. 이후 스페이스X에서 수석 엔지니어로 활동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링컨연구소를 거쳤다.

황 박사는 우주 분야 자문회사를 설립한 뒤 버진오빗에 약 2년간 발사체 기술 컨설팅을 제공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뉴스페이스의 일선을 뛰었던 전문가인 셈이다. 황 박사가 보는 버진오빗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나아가 뉴스페이스는 정말 실현 가능한 것인지 조선비즈는 지난 17일 화상 통화로 인터뷰를 가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버진오빗 본사. 버진오빗은 이달 4일(현지 시각)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연합뉴스

◇올드스페이스의 그림자… 버진오빗 파산 화 키웠다

버진오빗의 파산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로켓 발사 실패’와 ‘자금난’이다. 하지만 황 박사는 더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버진오빗의 파산 원인을 다섯 가지로 제시했다. 수익성 부재와 실행력 부족, 과장된 소형발사체 시장 규모, 다른 발사체와의 경쟁, 로켓 성능이다.

다섯 가지 원인은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 ‘올드스페이스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버진오빗을 이끈 댄 하트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항공우주기업 보잉에서 30~40년간 정부를 상대로 한 위성 사업을 이끈 인물이다. 버진오빗은 보잉-747기를 개조한 항공기 ‘코스믹 걸(Cosmic Girl·우주소녀)-747′에 로켓 ‘론처원(LauncherOne)’을 탑재하는 공중발사 방식을 채택해왔다.

올드스페이스와 뉴스페이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수익과 시간이다. 실제로 버진오빗은 첫 발사를 시작한 2020년부터 올해까지 단 4번만 발사에 성공하는 등 발사 실적이 저조했다. 발사 횟수를 늘려 수익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비용을 줄일 방법을 고민해야 했지만, 뉴스페이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스페이스X와 함께 성공적인 뉴스페이스 기업으로 평가되는 ‘로켓랩’은 로켓 부품을 줄이고, 3차원(D) 프린팅을 로켓 부품 제작에 접목하는 등의 혁신으로 발사 횟수를 늘렸다.

황 박사는 “올드스페이스는 정부에서 돈을 투자하고, 시간을 많이 주는 게 특징인데 비해 뉴스페이스는 상업 활동이 목적이기 때문에 경쟁사보다 높은 효율과 신속성을 갖춰야 한다”며 “뉴스페이스는 시간·돈·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올드스페이스 방식으로는 할 수 없는데, 버진오빗은 이를 간과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도 뉴스페이스는 계속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우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감소하고 있다. 미국 우주 분야 투자사인 스페이스 캐피탈(Space Capital)에 따르면 우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액은 올해 1분기 기준 22억달러(약 2조9436억원)로, 2021년 2분기 투자액(220억달러)에 비해 90% 줄었다.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황 박사는 우주 경제 시장에 대한 평가가 부풀려졌다고 지적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우주 경제가 2040년 1조1000억달러(1471조원)로 성장할 것을 예측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30년 1조4000억달러(1873조원)를 넘고, 2040년에는 2조7000억달러(3612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의 전망이지만 황 박사는 지나치게 부풀려진 수치라고 지적한다.

세계적인 금융기관이 우주 시장을 띄우는 근본적인 이유로는 회사 운영에 필요한 투자 자금 조달과 인수합병에서 발생하는 커미션(수수료) 때문이라는 게 황 박사의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버진오빗은 2021년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와 합병으로 나스닥에 상장했다. 버진오빗이 스팩 상장으로 지불한 수수료는 400억~535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버진오빗은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발사 서비스를 준비한다고 홍보했지만, 정작 한국을 동남아시아로 소개해 신뢰성이 의심됐다.

우주기업들에게는 암울한 상황이지만, 황 박사는 결국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는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옥석 가리기’를 통해 진정한 실력자들이 시장에 남았을 때에야 뉴스페이스가 유효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주 개발 전반을 민간과 상업 회사가 주도하는 시대는 분명히 오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 과장됐다”며 “뉴스페이스 버블을 주장한 지 2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그동안 망한 회사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버블이 지금 깨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이 한 번 깨끗해지면 실력 있고 재정적으로 건전한 기업들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2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뉴스페이스 시대 우주경제 개척자와의 대화'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뉴스페이스’ 시동 건 한국, 원천 기술부터 잡아라

우주산업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주목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정부는 지난해 ‘우주 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연내에는 우주 개발을 주도할 우주항공청이 개청한다. 이외에도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기술이전, 우주경제 모태펀드 조성 등 뉴스페이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황 박사는 한국에서의 뉴스페이스는 시기상조라고 답변했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원천 기술 수준이 미약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폐쇄적 특성을 가진 발사체·인공위성을 포함한 우주 분야에서의 주요국들과의 기술 차이는 평균 20년 정도라고 황 박사는 지적했다. 오히려 한국이 전기전자공학에서 강점을 가진 만큼, 우주 전자기기 분야로 집중하는 게 성공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황 박사는 “지금의 한국은 뉴스페이스 시대라는 이유로 정부가 기업에 기술을 전수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며 “하지만 주요국보다 떨어지는 기술로 상업 활동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앞으로 수요가 커질 우주 전기전자 분야에 집중해 수출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연구개발이 필요한 발사체·우주 탐사, 위성 레이저통신 같은 최첨단 분야는 계속해서 정부가 주도해서 진행하고, 기업들은 자생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정부가 뉴스페이스 패러다임에 매몰되기보다는 기업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함께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한국은 뉴스페이스보다는 올드스페이스의 역할이 성숙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뉴스페이스는 누가 시켜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며 “한국이 뉴스페이스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지만, 정부 주도하에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기업들은 기술을 이전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