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 공장 찾은 시진핑 주석의 ‘큰 그림’은 [글로벌 현장]

2023. 4.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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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 유치 위한 ‘파격 행보’ 선보인 시 주석…한국과 동행 의지 강하게 피력
[글로벌 현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을 찾아가 외자 유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 주석이 한국 기업의 중국 사업장을 찾아간 것은 2012년 집권 이후 처음이다.

시 주석은 광둥성 시찰 3일 차인 4월 12일 LG디스플레이와 광저우자동차 등의 산업 현장을 찾았다. 광저우차와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합작사인 광저우도요타도 후보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들르지는 않았다.

시 주석은 현지에서 대외 개방 추진 현황과 제조업의 질적 발전 상황, 과학기술 혁신 수준 등을 파악했다. 그는 LG디스플레이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외국 기업의 중국 투자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회사 관계자들과 대화하며 한·중 간의 우의를 강조하는 덕담을 했다
 

한국에 러브콜 보내는 중국


시 주석은 4월 10일부터 광둥성 시찰을 시작했다. 둘째 날인 11일에는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를 담당하는 인민해방군 남부전구의 한 해군 기지를 찾아 “실전 훈련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이어 광둥성 서부 농촌 지역인 마오밍시로 가 중국 특산 농산물 개발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안보와 식량 문제를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 시 주석은 3일 차에 산업 현장을 찾았다. 특히 외국 기업을 찾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시 주석은 2012년 말 집권 이후 중국 내 한국 기업의 사업장을 방문한 적이 없고 다른 외국 기업 방문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 주석의 파격 행보는 중국 지도부가 ‘제로 코로나’ 철폐 이후 강조해 온 개혁·개방과 외자 유치 방침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광둥성은 중국 개혁·개방의 중심지이자 시 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이 서열 1위인 당서기(1978~1980년)를 지낸 곳이다. 고영화 베이징 한국창업원 원장은 “시 주석이 한국 기업을 찾은 것은 한국과 동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 주석은 LG디스플레이 방문 현장에서 관계자들과 대화하며 한·중 간의 우의를 강조하는 덕담을 했다고 상황을 아는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일각에선 시 주석이 직접 외자 유치에 나선 것을 통해 중국의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수출 부진과 재정 적자 누적 등으로 외국 기업의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시도도 부담이다.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FDI)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증가율은 최근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 2월 FDI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6.1%로 1월 14.5%에서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6.1%는 2021년 1월 4.6% 이후 28개월 만의 최저치다. FDI 증가율은 작년 상반기 20~30%에 달했지만 ‘제로 코로나’ 통제 속에 하반기부터 급격하게 줄었다.
 
시 주석 등 지도부는 외국 기업들을 향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보장할 테니 안심하고 투자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발신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3월 말 시 주석의 최측근인 허리펑 부총리 주재로 광저우에서 ‘중국 투자 유치의 해’ 가동식을 열기도 했다. 중국이 국가급 투자 유치 행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허 부총리는 삼성전자와 바스프 등 글로벌 기업인 30여 명을 불러 모아 투자 확대를 당부했다. 중국이 외국 기업인을 비공개로 소집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공개 행사를 벌인 것은 이례적이다.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은 경기도 파주 공장과 함께 LG디스플레이의 양대 생산 거점으로 꼽힌다. 액정표시장치(LCD) 비율은 낮추고 유기발광다이오(OLED) 비율은 높여 가고 있다. 2006년 중국 측과 합작 형식으로 건설된 LG디스플레이 생산 기지는 광저우에서 가장 큰 외자 기업 중 하나다.

한국이 관심을 갖는 부분은 미·중 전략 경쟁 심화 속에 한·중 관계가 미묘한 상황에서 시 주석이 외국 투자 기업 중 LG디스플레이를 방문처로 택한 배경이다. 한·중 관계 중시 기조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고강도 대중국 디커플링(탈동조화)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참여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행보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은 최근 한국 기업을 향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관영 방송인 중국중앙TV(CCTV)는 잇따라 한국 기업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CCTV는 4월 16일 저녁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신원롄보를 통해 자국 최대 무역 박람회인 ‘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캔톤 페어)’ 소식을 전하며 한국 기업인과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휴대용 가스버너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를 ‘한국 참가 업체’로 인터뷰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CCTV는 사전 약속 없이 캔톤 페어 한국관을 찾아와 인터뷰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CCTV 신원롄보는 4월 9일에도 광둥 지역의 비즈니스 환경을 소개하는 기획 보도에서 현대차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 관계자를 실명으로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용은 중국 정부가 기업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이라거나 중국 경제의 전망이 밝다는 긍정적 내용이다. 짧은 화면, 인터뷰 하나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의미를 담는 중국 관영 방송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한국 기업 관계자들에 대한 연이은 인터뷰 보도는 한국 기업에 우호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 주석은 올 들어 프랑스·스페인·싱가포르·브라질 등 주요국 정상을 자국으로 불러들여 적극적인 ‘매력 공세’를 펼치고 있다. 우호 세력 확보가 미·중 패권 경쟁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러시아·브라질·중동 등을 규합해 반미 전선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도 ‘협력자’를 늘리는 이유다.

한국도 중국에 포기할 수 없는 카드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핵심 수단이 ‘산업의 쌀’인 반도체라는 점에서다. 미국이 ‘칩4 동맹’ 등 대중국 반도체 포위망에 한국을 끌어들이고 있는 점도 중국에 부담이다. 한국에도 중국이 중요하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 최대 수입국이고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중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 40%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도 중국 지지?


한편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전쟁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은 대만 문제에서 미국이나 중국의 길을 따르지 않고 독립적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무력 통일 시도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에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4월 9일 프랑스 경제 매체 레제코,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 등이 게재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했다. 그는 4월 5~7일 중국을 방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은 대만 위기와 이해관계가 없다”고 전제했다. 이어 “유럽에 가장 나쁜 것은 미국의 기조나 중국의 과잉 반응에 맞추면서 추종자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진영 논리에 빠지거나 우리 문제가 아닌 위기와 전 세계적 무질서에 휘말려선 안 된다”고 제안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미국과 견해가 일치하는 지역을 명확히 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대중 관계와 제재 등에선 유럽의 전략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은 중국·미국과는 별도의 ‘제삼의 축’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함께 중국을 방문, 시 주석과 3자 회담을 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중재한다는 명분으로 방중했지만 50여 명의 프랑스 기업인들을 대동, 굵직한 계약을 성사시켰다.

폴리티코는 시 주석과 중국공산당이 마크롱 대통령의 전략적 자율성 개념을 지지했고 중국 관리들은 유럽 국가들과의 거래에서 이를 계속 언급했다고 전했다.

조지 매그너스 영국 옥스퍼드대 중국센터 연구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중국이 경제적 거래를 통해 유럽에 분열의 씨앗을 뿌리고 EU와 미국 간 이견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가장 큰 균열은 (중국과의 관계에) 더 회의적인 EU 집행위원회·일부 동유럽 국가 중심의 한 축과 더 상업적으로 움직이는 프랑스·독일을 중심으로 한 다른 축 간에 있다”고 진단했다.

타마스 마투라 헝가리 코르비누스대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국과 EU 관계에서 ‘게임 체인저’가 됐고 마크롱 대통령의 ‘전략적 자율성’ 추구에도 중국이 EU와 미국 사이를 틀어지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방중에서 마크롱 대통령이나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누구도 교착 상태에 빠진 EU·중국 포괄적 투자 협정(CAI)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안보 우려가 현재 경제 문제를 압도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짚었다.

베이징(중국)=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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