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일은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일어난다 [책&생각]

한겨레 2023. 4. 2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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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우울하다.

2002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해 온 최은숙의 책 <어떤 호소의 말들> 은 조사관으로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인권위 활동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담담하게 써내려간 다정한 책이다.

정의감을 불사른 검사가 쓴 책도 있고, 변호사가 쓴 책들도 있지만, 이 책과 구분되는 결정적인 지점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쩐지 '인권위 조사관도 노동자'란 마음이 든다는 거다.

억울한 일은 당할 때도 차별적이지만 문제 해결 과정에도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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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어떤 호소의 말들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
최은숙 지음 l 창비(2022)

요즘 나는 우울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답답한 심경이다. 우울증 상태에서 본 영화 <다음 소희>는 마음을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정주리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다음 소희>는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대기업이고 좋은 직장이라는 학교 추천을 받아 찾아간 모 통신업체 콜센터에서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소희는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지만 회사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대부분 실업계 고교의 현장실습생들로 채워진 회사는 오로지 실적만 따질 뿐이었다. 현장실습을 나가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밝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평범한 고등학생 소희였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노동자성을 갈아 넣고도 현장실습생이란 이유만으로 정당한 급여조차 받을 수 없었다.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두 똑같이 답답한 현실뿐이었다. 결국 소희의 선택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영화에선 한 형사가 소희의 억울한 죽음을 앞에 두고 고통스러운 수사의 순례를 시작한다. 형사는 해당 기업과 학교, 교육청까지 찾아다니며 그 죽음의 원인에 대해 따져 묻지만, 모두가 경쟁과 실적의 노예가 되어 있는 현실에서 그 누구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육청에서 만난 한 장학사는 지극히 차분한 어조로 벽면에 붙어 있는 각 학교의 취업실적표를 보여준다. 분노한 형사 앞에서 장학사는 “적당히 합시다. 일개 도교육청의 장학사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2002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해 온 최은숙의 책 <어떤 호소의 말들>은 조사관으로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인권위 활동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담담하게 써내려간 다정한 책이다. 직업적으로 “억울합니다.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듣고 사는 사람들이 쓴 책은 이외에도 많다. 정의감을 불사른 검사가 쓴 책도 있고, 변호사가 쓴 책들도 있지만, 이 책과 구분되는 결정적인 지점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쩐지 ‘인권위 조사관도 노동자’란 마음이 든다는 거다. 책 속에서 저자는 2011년 조사관들이 인권위 앞에서 벌였던 1인 시위 이야기를 적고 있다. 이 나라는 인권위 조사관들조차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당하는 나라다.

억울한 일은 당할 때도 차별적이지만 문제 해결 과정에도 발생한다. 경찰, 검찰, 법원을 비롯한 민원처리기관이 사용하는 어려운 법률용어들은 자신의 언어로 억울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너무 높은 문턱이 된다. 영화 속 소희는 일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청년이었지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도 회사에서 당한 부당한 현실에 대해 말할 수 없었고, 항의하지 못했다. 말할 수 없었기에 그는 영화에서 ‘말’ 대신에 자신이 좋아하는 ‘춤’으로 유서를 썼다.

2022년 1월27일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지만, 그마저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전체 노동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2021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38.4%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죽었다. 국가인권위 조사관 최은숙은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노동자로 산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얼마나 타당하고 당연한 일인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노동자로서, 납세자로서, 시민으로서 대응하는 기술을 의무교육으로 배울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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