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우주를, 영혼은 몸을 움직인다 [책&생각]

고명섭 2023. 4. 2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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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기 교수 아리스토텔레스론
‘영혼론’ 둘러싼 쟁점 풀어내
“신이 우주의 제일원동자이듯
영혼은 육체 내부의 원동자”
<영혼론>을 쓴 아리스토텔레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철학
유원기 지음 l 아카넷 l 3만2000원

영혼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인가, 아니면 육체와 함께 영혼도 사라지는가?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이 유구한 물음을 철학적으로 묻고 분석적으로 탐구한 서양 최초의 철학자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 영혼과 생명의 관계를 규명함으로써 영혼이 불멸하는지 사멸하는지를 밝히려 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 전공자 유원기 계명대 교수가 쓴 <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철학>은 영혼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탐구를 깊숙이 들여다본 저작이다. 지은이는 현대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들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를 꼼꼼히 살펴 자신의 관점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영혼의 상을 빚어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는 세 시기로 나뉜다. 그리스 북부에서 태어나 17살 무렵 아테네의 플라톤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20년 동안 수련한 시기가 제1기이고, 플라톤 사후 아테네를 떠나 12년 동안 그리스 각지를 돌던 시기가 제2기다. 이어 49살에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에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다시 아테네를 떠나 죽음에 이르기까지가 제3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대한 저작을 남겼는데, 저술 시기는 대체로 제2기와 제3기로 모인다. 이 저작들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현전하는데, 그것만으로도 200자 원고지 수만장에 이른다. 이 엄청난 저작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천문학‧생물학을 포함한 자연학 관련 저술이다. 영혼에 관한 논의가 담긴 <영혼론>(‘영혼에 관하여’)은 이 자연학 분야에, 그중에서도 생물학 분야에 속해 있다. 오늘날 ‘심리철학’ 하면 인간 심리를 떠올리는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론을 살아 있는 자연 사물 곧 생명체에 관한 탐구로 보았다.

이 책의 지은이도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서 탐구의 출발점을 <자연학>으로 삼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 8권에서 생물을 ‘자신의 운동을 스스로 시작하는 자기운동자(autokinetos)’라고 규정하고, 그 생물 내부에 ‘부동의 원동 부분’과 ‘피동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부동의 원동 부분’이란 ‘움직이지 않는 채로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부분’이라는 뜻이고 ‘피동 부분’이란 ‘부동의 원동 부분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부분’이라는 뜻이다. <자연학>에 등장하는 이 생물 운동 규정을 상세히 살피는 곳이 바로 <영혼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모든 사물이 ‘질료와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데, 그 생각을 연장해 생물도 일종의 ‘질료와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육체와 영혼’이 그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때의 영혼이 뜻하는 것이 사람의 영혼만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을 포함한 생물 전반의 영혼이라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육체라고 부르는 것도 사람이나 동물의 육체만이 아니라 식물의 몸체를 포함한다. 요컨대 무생물과 달리 생명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영혼과 육체’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다.

여기서 논점으로 불거지는 것이 과연 영혼이 육체와 분리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다. 만약 분리될 수 있다면 영혼은 독자적 생명을 누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육체의 죽음과 함께 사멸할 것이다. <영혼론>은 모두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1권에서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반면에 3권에서는 인간 영혼의 사유 능력을 ‘능동적 지성’과 ‘수동적 지성’으로 나눈 뒤 수동적 지성은 죽음과 함께 소멸하지만 능동적 지성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본디 생각인가? 이 물음에 답할 실마리는 이 책의 저술 시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혼론>의 제1권과 제2권은 후기(제3기)에 쓴 부분이고, 제3권은 중기(제2기)에 쓴 부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은 후기로 갈수록 플라톤의 영향에서 벗어난다. 플라톤은 영혼이 불멸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영혼 불멸론’은 플라톤의 영향이 남아 있던 시기의 생각이고, ‘영혼 사멸론’은 플라톤의 영향에서 벗어난 뒤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추정에 근거해 이 책의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영혼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사멸한다’는 데로 귀착했다고 해석한다.

눈여겨 볼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영혼이 ‘부동의 원동자’라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자연 전체 곧 우주 전체가 움직이려면, 그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부동의 원동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최초의 원동자가 움직임을 일으킴으로써 우주 만물이 운동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최초의 원동자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이라고 명명한다. 이 동일한 원리가 생명체 안에도 있는데, 바로 영혼이 생명체 내부의 신처럼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부동의 원동자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이때 생명체의 운동에는 몸을 직접 움직이는 관절과 근육의 운동뿐만 아니라 소화 작용과 혈액 순환 같은 신진대사 활동까지 포함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은 심리만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생리도 관장한다.

그런데 영혼이 ‘부동의 원동자’라면, 다시 말해 그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면, 그 작용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여기서도 우주와 신체의 유비 관계가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가 회전운동을 하는 것이 에테르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을 가득 채운 에테르가 회전하여 천체의 원운동을 일으킨다고 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 안에 프네우마(pneuma)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있어서 이 물질을 매개로 삼아 영혼이 모든 신체 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프네우마라는 말은 본디 바람‧공기‧날숨을 뜻하며 거기서 후에 ‘성령’이라는 종교적 의미가 파생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네우마는 종교적 함의가 없는 단순한 ‘물질적 기운’이다. 신이 에테르를 매개체로 삼아 우주의 천제를 회전시키듯이, 영혼은 프네우마라는 물질을 통해 몸을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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