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부패의 역설로 본 ‘중국식 자본주의’ 작동 방식
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
위엔위엔 앙 지음, 양영빈 옮김 l 한겨레출판 l 2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집권 직후 부패가 “당과 국가를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고 경고하고, 중국 역사상 가장 길고 강력한 ‘반부패 운동’을 시작했다. 이미 150만명 넘는 관리들이 부패로 낙마했다. 부패는 정말로 중국 특색의 ‘망국의 함정’일까.
<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원제 China’s Gilded Age)는 부패가 역설적으로 ‘중국 고속성장을 이끈 힘’이었음을 보여준다. 저자인 위엔위엔 앙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수십년 동안의 통계와 중국 관료 수백명과의 인터뷰를 분석해 중국 정치·경제의 작동 방식을 ‘현미경’으로 보듯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미국, 인도, 러시아 등과의 비교를 통해 부패와 발전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복합적이고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모든 부패는 경제에 해로운가
이 책은 독이 되는 부패와 약이 되는 부패를 구분한다. 부패를 일선 관료의 갈취(바늘도둑), 공공재원 횡령(소도둑), 장애물을 피하거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주는 뇌물(급행료), 수익성 높은 특권을 받기 위해 고위 관료에게 주는 뇌물(인허가료)로 구분하고 각각이 경제 성장에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러시아와 인도를 비롯한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공공재원 횡령이나 관료의 갈취가 만연해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1980~1990년대에는 중국에서도 비슷한 부패가 만연했지만, 1998년 장쩌민-주룽지 정부는 전면적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 중하급 관리들의 갈취·횡령·급행료 부패를 차단하는 동시에 거대한 ‘이익 공유’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면 성과급 등으로 다른 지역보다 수십배의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자, 일선 관리들은 당장의 갈취보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키우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작은 부패는 억제되었지만, 경제가 발전할수록 최상층 정치인들의 ‘인허가료’ 부패가 급격하게 커졌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거물 정치인들과 기업가의 결탁을 통해, 기업가들은 경제적 폭리를 취하고 정치인들은 개인적 부와 초고속 성장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중국 정치의 스타였던 보시라이가 충칭 당서기로 있던 6년 동안 충칭의 연평균 성장률은 15.3%로 전국 31개성 가운데 1위였지만, 그 결말은 대규모 부패와 살인, 권력투쟁으로 얼룩진 낙마였다.
‘인허가료’ 부패는 효과도 강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심각한 스테로이드와 비슷하다. 투자자들이 생산적 경제 활동 대신 고위 관리와 결탁해 값싸게 토지를 낙찰받아 폭리를 취하는 부동산 투자에 집중하게 되고, 지방정부 부채는 위태롭게 증가한다.
부패는 중국만의 특별한 문제인가
중국이 보여준 만연한 부패 속의 급속한 성장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19세기말~20세기 초 미국의 ‘도금시대(Gilded Age)’와 매우 유사하다. 이 시기 미국에서도 맹렬한 성장과 불평등, 재력가들과 결탁한 부패 정치인들이 곳곳에서 활약했다. 주 정부가 이리 운하처럼 거대 프로젝트를 건설할 때 투자 회사를 통해 채권을 판매해 재원을 마련하고 건설사에는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고 뇌물을 받았다. 이렇게 축적된 위험이 결국 1837년 미국의 첫번째 대공황으로 폭발하자, 미국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 행정, 정치 분야의 개혁을 추진했다. ‘진보 시대’로 불리는 이 단계를 거치며 미국은 20세기 초강대국이자 패권국가로 향하는 길을 닦았다.
이 책은 ‘가난한 나라들만 부패로 고통받고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에는 부패가 없다’는 잘못된 관점에도 도전한다. 현재 미국의 로비는 제도화된 ‘합법적’ 형태로 진행되는 대규모 인허가 부패라고 강조한다. 초갑부들, 금융기업들은 ‘인허가료’ 부패를 통해 정치적 법률적 시스템을 조종한다.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 아래 중국은어디로 향하나
부패가 중국에서 유독 특별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과장하거나, 중국의 실패나 붕괴 원인이 될 것처럼 과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중국의 성장에서 부패는 모순적 역할을 해왔다. 중국은 부패에 의존하는 성장의 ‘도금 시대’를 넘어서서 ‘진보 시대’로 나아가야 할 갈림길에서 시진핑 집권 시기를 맞이했다. 시진핑은 과감한 반부패 운동으로 관료들이 높은 경계를 유지하게 했고 대중들의 지지도 얻었지만, 부패 사건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는 관리들의 근무 태만, 결정 미루기 등 복지부동이라는 새 문제를 만들어냈다. 시진핑 시대 중국은 상명하복 해법(엄중한 단속)이 새 문제를 낳고(복지부동), 체제는 이 문제를 더욱 상명하복적 해법(복지부동 처벌)으로 풀려고 하는 역설을 보이고 있다.
지은이는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이 부패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부패를 만들어낼 것으로 본다. 더 위험한 부분은 최고위 엘리트들이 받는 뇌물은 파벌 경쟁과 정치적 권력 승계를 위한 투쟁을 부추겨 체제 위협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중국이 “경제에서 국가가 가진 거대한 권력”이라는 핵심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자원을 통제하는 권력을 가진 관료와 결탁해 특혜를 받으려는 수요는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려스럽게도 시진핑은 반대로 움직였다”는 게 이 책의 평가다. 시진핑 집권 이전 중국 사회는 힘겹지만 조금씩 개방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시진핑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개혁과 부패 감시 역할을 제거해버렸고, 국가의 권력을 훨씬 강화했다. ‘중국식 진보 시대’의 길을 가로막은 셈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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