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의 옛 그림 이야기] 꽃이 피고 진들 무얼 그리 애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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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지는 꽃이 사람과 무슨 상관이랴.
때 오면 피고, 때 가면 지는 꽃이다.
'빈산에 사람 없이 물 흐르고 꽃 피네.' 중국 문인 소동파가 지은 글에서 따온 이 여덟자, 뜻이 정녕코 심심하기만 한가.
봐라, 빈산에 사람 없이도 물은 흐르고 꽃은 잘도 핀다! 물이나 꽃은 저들끼리 미리 입 맞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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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고 꽃은 잘도 핀다
저들끼리 입 맞추지 않아
단지 인간이 조바심 낼뿐
피고 지는 꽃이 사람과 무슨 상관이랴. 때 오면 피고, 때 가면 지는 꽃이다. 이 뻔한 이치를 두고 심약한 이가 조바심 낸다.
당나라 시인 엄운의 엄살은 유난하다. 낮술 한잔 걸친 그가 꽃 앞에서 애석해한다. ‘봄빛 슬며시 돌아가는 곳 어디인가(春光<5189><5189>歸何處·춘광염염귀하처)/ 다시 꽃 앞에서 술잔을 잡았네(更向花前把一杯·갱향화전파일배)/ 종일 물어봐도 꽃은 대답 없으니(盡日問花花不語·진일문화화불어)/ 꽃은 누구를 위해 시들고 피는가(爲誰零落爲誰開·위수영락위수개).’ 가는 봄이 아쉽기로서니 꽃에 원망을 돌릴까.
물은 어떤가. 땅의 높낮이를 따르는 게 물이다. 흐르는 물은 떨어지는 꽃과 언약하지 않는다. 물은 갈 길로 가고 꽃은 바람 따라 날린다. 그래도 산중 은사는 사연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낙화와 유수에 무슨 교감이 있을까마는, 그가 읊은 시는 이렇다. ‘떨어지는 꽃은 뜻이 있어 흐르는 물에 안기건만(落花有意隨流水·낙화유의수류수)/ 흐르는 물은 무정타, 그 꽃잎 그냥 흘려보내네(流水無情送落花·유수무정송낙화).’ 흐르는 물과 떨어지는 꽃은 말 주고받을 일이 애당초 없다. 유정하고 무정하기는 당연히 사람의 심사일 뿐이다.
18세기 조선의 화단을 소란스레 뒤흔든 호생관(毫生館) 최북을 기억하는지. 최북은 성질머리 왁자하기로 소문난 화가였다. 얽매인 데 없는 자질이 그의 그림에서 펄떡거린다. 이 산수는 어떤가. 한마디로 반전이 똬리 튼 산수화다. 따져보자. 예부터 유정한 마음을 자연에 의탁하는 동양인의 기질과 몹시 어울리는 장르가 산수화라 했다. 그런 기대를 뒤엎으려는 것이 최북의 작품이다. 다듬지 않아 서툴고, 거칠어서 서먹하기조차 한 이 그림에 이름 붙이노니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다.
텅 빈 산속에 얼기설기 풀로 엮은 정자와 꽃망울이 맺힌 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수풀 우거진 한쪽으로 계곡물이 흘러내린다. 첫인상이 간소하면서 모자라기도 한 느낌이다. 이렇다 할 정성이 안 보여서 허겁지겁 붓을 휘두른 자취가 눈에 거슬린다는 감상자도 있을 테다. 눈길을 붙잡는 것은 화면에 큼직하게 갈겨 쓴 글 한토막이다.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 그 뜻은 얼핏 심심하다. ‘빈산에 사람 없이 물 흐르고 꽃 피네.’ 중국 문인 소동파가 지은 글에서 따온 이 여덟자, 뜻이 정녕코 심심하기만 한가.
봐라, 빈산에 사람 없이도 물은 흐르고 꽃은 잘도 핀다! 물이나 꽃은 저들끼리 미리 입 맞추지 않는다. 사람 손 타는 바가 전혀 없다. 인간사에 시시콜콜 두남두지도 않는다. 인간의 기쁨·성냄·슬픔·즐김 따위는 알 바 없이 흐르고 핀다. 비 오고 바람 불고, 꽃 피고 꽃 지는 풍경은 그 자체로 유정하거나 무정하지 않다. 시 짓고 그림 그리는 이들이 저 혼자 겨워하며 마음이 찼다가 기울었다 할 따름이다.
노자가 말했다. 천지는 불인(不仁)하다. 인자하지 않을뿐더러, 희언(希言)이다. 자연은 지어낸 말로 떠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북은 인기척 없이 텅 빈 정자를 그려 넣어 그 웅숭깊은 깨달음을 넌지시 전한다. 자연은 노상 그러하고, 오로지 그대로여서 자연이다. ‘공산무인도’는 새삼 일깨운다. 꽃 지고 잎 다 떨어지는 날, 더욱 분명해진다는 것을. 저 빈산이 낙엽으로 뒤덮이는데 어디서 발자취를 찾아낼 것인가. 닿을 수 없는 헛된 바람으로 속 태우지 말지니, 부재와 결핍을 견디는 것이 우리네 삶 아니던가.
손철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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