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폴란드 농업부 장관의 사임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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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전쟁의 참화가 계속되고 있다.
폴란드는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에 군사장비를 지원했다.
올초 우크라이나가 대대적 반격을 위해 서구의 최신식 탱크를 요청할 때 폴란드는 자국 내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3월말 EU 정상들에게 우크라이나산 곡물 유입이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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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전쟁의 참화가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2위 군사 대국인 러시아의 공격에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선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의지와 군대의 전의가 군사적 열세를 극복했다는 평가가 뒤따르고,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군사적 지원이 주효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폴란드다. 폴란드는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에 군사장비를 지원했다. 올초 우크라이나가 대대적 반격을 위해 서구의 최신식 탱크를 요청할 때 폴란드는 자국 내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독일과 미국이 자국의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이 난민 신세가 됐을 때 국경을 열어 이들을 보듬어준 곳도 폴란드였다. 현재 200만명가량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폴란드에 거주한다. 우크라이나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폴란드의 진심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최근 폴란드 내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반감이 발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산 곡물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한 직후 흑해가 봉쇄되자 우크라이나는 이를 대신할 육로를 개척해야 했다. 이때 폴란드가 나서서 그 통로를 제공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폴란드 시장에 풀리면서 곡물값이 폭락한 것이다. 폴란드 농민들의 불만은 고조됐고 급기야 트랙터를 몰고 도심에서 시위하기에 이르렀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폴란드 등 인접국 농민들에게 5630만유로(한화 약 828억원) 규모의 지원을 제안했으나 이는 시장을 안정시키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3월말 EU 정상들에게 우크라이나산 곡물 유입이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달라”고 촉구했다.
4월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폴란드의 적극적인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바로 그날 폴란드 농업부 장관이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헨리크 코발치크 장관은 “EU 집행위원회가 (폴란드) 농민들의 기본적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게 분명한 까닭에 장관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동맹국의 면전에 강펀치를 날린 셈이다. 현재 폴란드의 농업이 얼마나 타격을 받는지, 폴란드 농민들의 불만이 얼마나 큰지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동시에 한 국가가 직면한 농업의 위기가 타국과의 우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우리나라도 폴란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 값싼 농산물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와 힘든데, 미국의 농산물시장 개방 압력은 꾸준하고 집요하다. 올해도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위생·검역 규정으로 사과·배에 대한 수입을 제한한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관련 법안을 통해 미국 농산물의 수입을 규제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가간 자유로운 교역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 위태롭다. 폴란드든 우리나라든 ‘총성 없는’ 상시적 식량 전쟁에 직면한 것은 매한가지다. 이번 폴란드 국정책임자들의 결기에 찬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의 생사를 책임진 국정책임자들에게 그에 못지않은 강단(剛斷)을 요구하고 싶다.
윤배경 법무법인 율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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