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복의 뉴웨이브 in 강릉] 1. 게으름을 모르는 창의성으로, 구정면의 아트실험
대추무파인아트 김래현 대표
정체된 지역미술계 ‘새바람’
전투기 소음 문제 해학 가미
‘dB. 599,850원’전시회 개최
‘이어폰 꽂은 열두제자’ 눈길
창작공간 크리에이티브1230
입주작가 5명 탈장르 작업 주력
낯선 작업도 갈증 느끼면 도전
대추무·크리에이티브 1230
지역 특수성 가미 GIAF 이목
10월 한달간 제2회 GIAF 오픈
동해의 모든 물결은 언제나 새 물결이지만 사람 사는 곳에서 새 물결은 갈망의 대상이다. 찾아 나서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파동의 시작은 미미하기에 한동안은 사람은 물론 동물의 촉수에도 도달하지 못할 때가 많다. 시간이 축적되고 대지의 체온이 높아지면 파동은 마침내 물결이 되고, 사람들은 이를 보고 ‘뉴웨이브(New Wave)’라고 소리치며 환호한다. 영동지역의 중심, 강릉의 문화예술계에도 이제 그런 물결이 도래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는 매달 한 차례씩 심상복 컬쳐랩 심상 대표와 함께 이 물결의 흐름과 높낮이를 가늠한다.
쌕쌔기, 강릉 사람들은 전투기를 이렇게 부른다. 강릉 남항진 바닷가에 1951년 대한민국 첫 전투비행부대가 창설된 이후 그 소음은 시민들의 차분한 일상을 수시로 흔들어 놓곤 했다. 세상이 변해 전투기 소음 피해보상법이 생겨났고, 지난해 처음으로 보상금이 지급됐다. 도시의 민원이 엉성하지만 일단락된 것으로 치부하면 그만인데 대추무파인아트의 공동 대표인 김래현, 설희경씨는 별난 시선으로 접근했다. ‘dB. 599,850원’이란 제목으로 작년 5월 7일부터 석 달 간 전시회를 열었다. 컨템포러리 아트라는 도구로 사회문제의 재해석에 ‘도전’한 것이다. 여전한 분단국가에서 전투기 훈련의 필수 부산물을 터치한 것이 그렇고, 소음을 아트로 치환하는 시도가 그랬다. ‘강릉스럽지 않은 작업’은 런던의 유명 예술대학인 골드스미스 출신의 김 대표 머리에서 나와 아내 설씨의 기획으로 구체화되었다.
“그 돈이면 에어팟 두 개를 살 수 있겠네요.”
재미없는 주제이니 해학이 가미되면 좋겠다는 기획 의도에 이 지역 출신인 배철 작가의 첫 반응은 이랬다. 보상금으로 에어팟을 산다면 기능적으로 쌕쌔기 소음도 차단할 수 있을 거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했다. 예수의 12제자들은 귀에 꽂힌 에어팟 덕에 소통단절이라는 21세기 인간들의 놀이도 잠시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지역 미술계에 뉴웨이브를 만들기 위해 배 작가는 요즘 동료 작가들과 한 공간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시 외곽인 구정면의 한적한 농촌, KTX가 다니는 높다란 다리 밑에 창고 같은 건물이 두 동 있다. ‘크리에이티브 1230’이라는 창작공간이다. 얼마 전 이곳에 국제미술계의 거물이 나타났다.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프란시스 모리스 관장이었다. 광주 비엔날레 참석차 방한한 그는 신축 중인 솔올미술관(관장 김석모, 설계 리처드 마이어, 오는 10월 개관) 현장을 보기 위해 강릉에 왔다가 대추무를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됐다. 한국 지방도시의 작가들은 요즘 어떤 작품에 매달려 있는지 궁금하다고 해서였다. 배 작가를 비롯한 다섯 명의 작가들은 다들 입이 쩍 벌어졌다. 모리스 관장은 영 아티스트들과 스스럼없이 사진도 찍고 한 아름 격려를 안기고 떠났다.
4년 전, 거의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김 대표는 적이 놀랐다고 한다. 지역 미술계가 매우 정체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추무 미술관을 지은 것도 새 바람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고 싶어서였다. 지난해 하반기 6개월간 강릉문화재단이 주관한 ‘파이스트(Far East) 창작스튜디오’ 운영에 관여한 것도 같은 목적에서였다.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된 세 유명작가(공시네, 정유미, 최선)와 1230의 스타트업 작가들을 연결해 최신 미술계 트렌드를 공유하는 시간을 적극 마련하기도 했다.
크리에이티브 1230은 본래 영상제작업을 하는 김요한 코리아이미지 대표가 마련한 업무용 공간이다. 제품 광고와 다양한 홍보동영상을 제작하는 곳인데 젊은 작가들에게 작업공간으로 내주고 있다. 3년 전 배 작가가 처음 입주했고 그후 한 명 한 명 늘어나 여섯 명까지 늘어났다. 최근 수임 작가가 영국으로 석사 공부를 위해 떠나면서 다섯 명이 되었다. 다들 미대를 졸업하고 밥벌이와 전업작가의 길을 고민하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모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장르간 경계를 두려워 않고 넘나든다는 것이다.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라도 갈증을 느끼면 바로 시도해 보는 정신이다. 박연후 작가도 지난 해는 오브제를 평면화하는 작업을 주로 했는데 올해는 영상과 설치 작업에 도전할 작정이다. 박상현 작가도 조소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사진과 영상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골판지로 조형미를 추구하는 서동진 작가는 직접 소설을 쓰고, 작품을 삽화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근처의 강원예고를 나온 김승욱 작가는 어릴 적부터 쌓여온 화를 환경오염과 같은 사회적 모순을 회화로 풀어내는 데 쓰고 있다.
같은 30대이지만 김요한 대표는 사업하는 사람답게 공간의 생산성에 늘 신경 쓴다. 작업에 보상이 있어야 힘을 얻어 새로운 물결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그는 여기서 입주작가 전시회를 열었다. 지역 향수업체와 손잡고 작가들을 대변하는 여섯 종류의 향수를 만들어 같이 선보였다. 이 시도는 보기 좋게 맞아 떨어졌다. 작가 이름을 브랜드로 한 향수가 1000만원어치나 팔렸다. 김 대표는 “작가들이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는 생각이 뚜렷하다.
대추무를 비롯해 김요한 대표와 1230 작가들이 작은 물결이라도 일으키려고 애쓰고 있다면 이들을 모아 큰 물결로 만들려는 운동도 지난해 시동을 걸었다. 영동지역 최대 기업으로 발돋움한 파마리서치(회장 정상수)는 지난해 11월4일부터 한 달간 제1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를 열었다. 박필현 파마리서치문화재단 이사장과 박소희 예술감독은 국내외 작가 15명을 초대해 의미 있는 장소 다섯 곳에서 지역의 특수성과 예술의 보편성을 담은 작품을 전시하며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제2회 GIAF는 오는 9월 말 오픈해 한 달간 열린다. 강릉은 지금 작은 물결이 모여 큰 파도를 만들어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꿈을 꾼다.
>>> 심상복 대표
△서울대 경영학과·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 △중앙일보 뉴욕특파원·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한양대 특임교수·이화여대 초빙교수 △현재 컬쳐랩 심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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