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소설 독자를 즐겁게 하는 거짓말…변주의 매력 [심완선의 낯설지만 매혹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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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인공지능(AI)과 로봇, 우주가 더는 멀지 않은 시대입니다.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줄 SF 문학과 과학 서적을 소개합니다.
좋은 독자는 변주를 알아보고 이에 환호한다.
그리고 이러한 배반이야말로 장르 독자를 열광시키는 매력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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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로봇, 우주가 더는 멀지 않은 시대입니다.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줄 SF 문학과 과학 서적을 소개합니다. SF 평론가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해 온 심완선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SF 독자는 자신이 기대하지 않은 결말을 기다린다”는 말이 있다. 장르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는 해당 장르의 규칙을 익히기 마련이다. 사실 규칙보다는 어떤 관습의 총체에 가깝다. SF나 판타지는 현실 규범과는 다른 규범이 작동하는 세상을 제시하곤 한다. 장르를 좋아한다는 건 특유의 관습을 좋아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장르 독자는 신작을 집을 때 자신이 아는 관습이 작품에 녹아있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길 바란다는 뜻은 아니다. 장르적으로 좋은 작품은 답습보다 변주를 택한다. 좋은 독자는 변주를 알아보고 이에 환호한다.
위래의 ‘백관의 왕이 이르니’는 장르 본연에 다가가는 단편집이다. 매 편이 ‘규칙이 있다’는 규칙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규칙의 내용은 매번 달라진다. 김보영의 해설에 따르면 작가는 ‘익숙한 게임’을 제시한다. 이번 단편, 이번 스테이지의 설정을 이해하고 결말을 기다리는 게임이다. 순수한 게임에 가까운 ‘쿠소게 마니아’에서는 설명 없이 사건이 벌어진다. 주인공 소년은 영문도 모른 채 몇 번이나 죽는다. 도중에야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그는 여객기가 학교에 추락해서 일어난 폭발로 죽는다. 소년은 죽을 때마다 사건의 시작점인 1시 23분 45초로 돌아간다. 폭발이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지기 때문에 단 17초조차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소년은 자신이 되돌아간다는 규칙을 파악하고 “주변의 사물을 더 이상 일상적인 용도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익힌다.
이렇듯 게임은 두 단계로 나뉜다. 독자가 이해하는 단계, 작가가 놀라게 하는 단계다. 능숙한 독자는 1단계를 빠르게 클리어한다. ‘르네 브라운을 잊었는가’는 “자기 장례식에 온 기분이 어떤가?”라는 대사로 시작한다. 작중 사람들은 클론으로 의체를 만든다. 의체는 ‘태생체’와 마찬가지로 본인으로 인정된다. 몸이 죽더라도 다음 몸을 준비해두면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다. 이 단편은 노골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SF다. 2단계 역시 만족스럽다. 여의찮게 결말을 살짝 밝히자면, 사실 죽은 몸이 가짜다.
나아가 ‘성간 행성’ 등은 우주에 관한 우리의 전제를 파괴한다. ‘영웅은 죽지 않는다’는 초인들의 두뇌 싸움이 핵심인 스릴러다. 판타지인 ‘백관의 왕이 이르니’는 율법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해석을 도출하는 일을 관건으로 삼는다. 만약 논리의 뼈대가 전면에 노출되었다면 지루했을 텐데 인물과 서사와 배경이 문제에 찰싹 달라붙어 재미있는 소설이 되었다.
위래는 글쓰기에 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독자의 다음 문장에 대한 예측을 작가가 예측하고 다음 문장을 쓰는 것”이라고. 독자는 술래가 되어 이야기를 쫓아가지만 사실 진짜 술래는 마지막에 숨어 있다. 그래서인지 ‘백관의 왕이 이르니’에는 거짓말이 자주 등장한다. 상대는 물론 독자를 속여 결국은 즐겁게 만드는 거짓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반이야말로 장르 독자를 열광시키는 매력의 원천이다.
심완선 SF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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