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안 썼다"는 한동훈 장관 딸은 어떻게 MIT 합격했을까 [팩트파인더]
표절·대필 의혹 글 사용 않는다고 했지만
전문가들 "사용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
미국 대학은 정시도 입학사정관제 전형
지원자 대다수 내신·수능 만점 변수 아냐
"자기소개서·추천서 영향 컸을 듯" 진단
"미국 대학 '학문적 정직' 중한데도 합격"
"고위층 편법 행위 비판 어려워져" 씁쓸
이른바 '스펙 공동체' 의혹의 중심에 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딸이 미국 명문대인 매사추세츠 공대(MIT)에 합격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한 장관 딸은 고교 1, 2학년 시절 돈만 내면 게재할 수 있는 '약탈적 학술지'에 여러 글을 게재했는데, 단어와 문장 구조만 바꾼 '교활한 표절(Sneaky Plagiarism)' 또는 '대필' 의혹이 제기됐다. 한 장관은 지난해 5월 인사청문회에서 “(문제가 된 글들을) 입시에 사용하지 않았고, 앞으로 입시에 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 대학 입시 전문가들은 그러나 고교 시절 대외활동(Extracurricular Activity) 없이 MIT에 입학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미국 대학은 성적과 대외활동,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입학사정관제(Holistic review)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원자 중 누구를 선발할지는 사립대 고유의 권한이지만, 입시 전문가들은 “한국에선 매년 10명 남짓 MIT 합격생이 나오는데 과학고와 영재고 출신들이 다수였고, 표절 논란이 제기된 지원자가 합격한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한 장관 딸의 MIT 합격을 두고 뒷말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일보는 미국 입시 전문가 4명과 함께 이번 논란의 쟁점을 짚어봤다.
①'정시'라서 내신과 수능점수가 중요했다? (X)
일각에선 한 장관 딸이 정시 모집에 지원해 합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한 장관 딸은 명문학교(채드윅 송도 국제학교)에서 내신 만점에 미국대학 입학시험에 해당하는 ACT도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며 “우리나라로 치면 본인 스펙이나 이런 것을 활용해 들어가는 수시 입학이 아니라 정시로 입학한 것이다. 정시로 입학했는데 의혹을 제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장 위원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 대학 입시는 수시(early)와 정시(regular) 모집으로 나뉘며, 두 전형 모두 입학사정관제가 기본이다. △대외활동 △자기소개서 △추천서 △내신 △수능 점수 등이 모두 필요하다는 의미다. MIT뿐 아니라 미국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8개 명문대학)에 지원할 정도의 학생이라면 수능(SAT 또는 ACT)과 내신은 대부분 만점에 가깝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서 입시컨설팅을 하고 있는 양민 박사는 “내신과 수능이 만점이라도 떨어지는 지원자가 수두룩하며, 수능 시험 자체는 변별력이 없다. 대외활동과 에세이, 추천서에서 당락이 갈린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MIT가 공개한 지난해 입학생들의 ACT 점수는 대부분 만점이거나 만점에 가까웠다. 해외 국적 학생 합격률은 1.4%였고, 한국 국적은 11명으로 대다수는 과학고와 영재고 출신으로 알려졌다. 한 장관 딸은 한국과 미국 이중국적으로, 지난해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 합격률은 5.0%였다.
특히 2010년 개교한 채드윅 송도 국제학교에서 MIT 합격생이 나오기는 한 장관 딸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채드윅 국제학교는 한국일보에 “학생들의 사생활과 학생들이 입학하는 대학과의 관계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특정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수에 대한 정보를 공개적으로 공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채드윅은 매년 홈페이지에 학생들이 합격한 대학 명단을 공개해왔다. 최근 5년간 합격자 명단에 MIT는 없었다.
②논란이 된 스펙을 활용하지 않았기에 문제가 아니다? (X)
한 장관 딸이 고교 시절 쓴 글 대다수는 학술지에서 삭제됐다. 이날 기준 8편 중 7편이 학술지에서 철회됐다. 삭제된 글들은 '교활한 표절(Sneaky Plagiarism)’ 또는 '대필' 의혹이 제기됐던 논문들이다. 철회되지 않은 논문은 방글라데시의 한 대학 소속 석사생과 함께 작성한 논문으로, 데이터셋(dataset) 무단 인용 의혹이 제기됐다.
한 장관은 지난해 인사청문회 당시 “(딸이 쓴 글들은) 여러 학습 활동을 저장해놓거나 학교 과제를 아카이브 형식으로 저장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며 “스펙 쌓기용이 아니며, 입시에 사용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 대입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주장에 의문을 표하는 분위기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 공인교육 플래너이자, 미국 대학 입학사정관협회 소속 전문가인 박영희 세쿼이아 그룹 대표는 “대외활동 중 학문적으로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학술지에 기고하는 게 트렌드”라며 “입학사정관들이 지원자들의 SNS 등을 모니터링하기 때문에, 학생들도 관심 분야와 공부해왔던 것을 보여주는 경향이 생겼다”고 밝혔다.
해당 글들이 고교 시절 학교에 제출된 과제였다면 큰 문제였다는 의견도 있었다. 양민 박사는 “미국 명문 보딩스쿨에선 학생이 제출한 과제에 표절 문제가 드러나면, 무관용 원칙으로 퇴학시키는 경우도 있다”며 “미국 대학에선 학문적 정직(Honor Code)을 중시하고, 공적 신뢰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채드윅 국제학교에선 한 장관 딸에 대해 징계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일보가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채드윅 국제학교 징계현황에 따르면, 학교 측은 외부에 투고한 논문 등이 문제가 되면서 열린 징계위원회(Honor Council)와 관련해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답했다.
③입시 전문가들 "자기소개서·추천서 영향 컸을 듯"
입시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하면, 결국 MIT 합격을 좌우하는 것은 대외활동과 자기소개서, 추천서라고 한다. 미국 대입 학원인 프렙 아카데미 관계자는 “한 장관 딸의 경우 자기소개서와 추천서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가 된 논문들 이외에 새롭게 게재된 논문이나 경시대회 수상 실적이 없는 데다, 현실적으로 입시 직전에 새로운 대외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종경 직지 아카데미 원장도 “자기소개서나 추천서에 아버지의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정서에선 ‘아빠 찬스’가 문제가 될 순 있지만, 인맥도 능력이라고 보는 미국에선 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 대입 원서에는 부모 직업, 가족 배경 등을 적는 문항이 있다.
올해 MIT 입시에선 지원자의 수학·과학 교사 중 1명, 인문학·사회과학·언어 교사 중 1명의 추천서가 필수였고, 외부 추천서도 추가로 받았다. 한국일보는 MIT와 한 장관 측에 누구의 추천서를 받았는지 문의했지만 양측 모두 답하지 않았다.
MIT는 한국일보에 “MIT는 학업적 진실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원자와 관련해 보고된 사건을 조사한다”며 “(한 장관 딸에 대한) 입학 제안을 유지하고 있음(4월 22일 기준)을 확인해드리며 이 문제에 대한 추가 정보나 코멘트는 제공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스펙 공동체 논란’ 무엇을 남겼나
한 장관 딸을 둘러싼 ‘스펙 공동체 논란’은 무엇을 남겼을까. 입시 전문가들은 고위직 자녀들의 ‘국제학교 진학→돈과 인맥으로 스펙 관리→미국 명문대 진학’ 과정에서 벌어지는 편법 행위들을 문제 삼기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채드윅과 같은 국제학교가 설립 취지와 다르게 기득권층의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하게 만드는 합법적 무대가 됐다고도 지적했다.
국제학교는 외국인학교와 달리 입학 제한이 없다. 해외 체류 경험이 없는 내국인도 시험을 통과하고 학비를 감당할 수 있으면 입학할 수 있다. 채드윅 국제학교의 올해 유치원·초등학생의 연 학비(입학료 등 제외)는 약 4,334만 원 △중학생은 4,658만 원 △고등학생은 5,099만 원이다.
프렙 아카데미 관계자는 “이번 논란은 MIT 등 미국 아이비리그가 한국 학생들이 이 정도 가짜 스펙을 쌓는 건 문제 삼지 않는다는 방증일 수도 있어 여러 생각이 든다”며 “유학생 다수가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대기업 임원 자녀들인데, 이들이 미국 명문대 간판을 쥐고 한국으로 돌아와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내며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일이 반복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원장도 “결국 부모의 재력과 인맥 등으로 학문적 윤리가 무시된 스펙을 만들었고, 이것이 미국 명문대 입학에 아무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게 드러났다”며 “학원 일을 업으로 삼는 제게도 참 씁쓸한 모습”이라고 밝혔다.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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