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명문학교·교육특구 추진에... "일반고 황폐화·양극화 될라"
⑤교육계 뒤흔들 남은 쟁점들 : 교육자유특구
"교육으로 지방 살린다" 규제 완화 방침
전문가들 "고교학점제 등 공교육 내실화가 우선"
편집자주
유보통합부터 대학개혁까지. 정부가 교육의 틀을 다시 짜겠다는 계획을 밝힌 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한국일보는 교육계 전문가 13명에게 이번 정부 교육개혁 정책의 기대효과와 부작용, 위기와 기회 요인(SWOT)을 물었습니다. 공정한 출발선은 가능할지, 잠자는 교실은 일어날지, 대학을 위기에서 구해낼 방법은 무엇일지 5회에 걸쳐 분석합니다.
"지방에 좋은 중고등학교나 지방대 등 교육시설이 있으면 좋은 기업들이 많이 내려오고, 그 인재 상당수는 거기에 남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한 발언은 정부가 왜 '지역 명문학교 부활'을 강조하는지를 보여준다. 인구 소멸 위기를 겪는 지방이 부활하기 위해선 기업의 이전이 필요한데, 학교 설립과 운영에 관한 규제가 해제된 교육자유특구에는 교육 수요가 있는 인재가 몰리고, 기업도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수한 학생이 갈 수 있는 지역 국공립학교·대안학교 많이 세운다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를 존치하고 기업이 지역에 자사고를 설립·운영하도록 지원하며, 지자체-교육청-학교가 협약을 맺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협약형 공립고', 교대와 사범대 등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국립 아카데미고' 등으로 국공립고 유형도 늘리는 것이다.
또 교육부는 학교설립과 운영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는 '교육자유특구'를 지정해 특구 내 대안학교의 설립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다. 대안학교는 교사 자격, 교육과정 운영, 검인정 교과서 사용, 3월 학기제와 학년제 등 초중등교육법의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공교육의 영역에 속하는 학교 유형도 다양화한다.
한국일보 교육개혁 자문단의 전문가들은 지역의 교육 경쟁령이 향상될 수 있다는 점을 '기대효과'로 꼽았다. 김병주 영남대 교수는 "자유로운 교육이 가능해져 지자체의 인구 유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일률적인 규제는 교육의 발전과 혁신을 저해한다"며 "잘하려는 지역은 규제를 혁신하고, 뒤처진 지역은 더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갈 수 있는 선택지가 소수의 전국 단위 모집 자사고가 아니라 지역의 우수한 대안학교, 국공립학교로 늘어나고 지역에 머무는 인구도 늘어날 거라는 얘기다.
차터스쿨, 공교육 혁신 위해 도입됐지만...우수 학생 선점, 주변은 황폐화 우려
정부가 추진하는 '협약형 공립고'의 모델은 미국의 차터스쿨이다. 차터스쿨은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질적 차이가 큰 미국에서 '질 높은 공립학교'를 원하는 교육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도입된 학교다. 미국 공립학교는 지역 교육당국이 운영하는데, 차터스쿨은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지만 학생·교사 선발, 교육과정 운영은 사립학교처럼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1991년 미네소타주에서 공교육 개혁을 위해 도입됐고, 2019년 기준 미국 2만3,529개의 공립 고등학교 중 8.8%인 2,088개가 차터스쿨이다. 일부 주에서는 민간 회사가 협약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차터스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공교육에 '경쟁'을 불어넣어 교육의 질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있지만, 일반 공립학교보다 차터스쿨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떨어진다거나, 같은 차터스쿨이라도 '입지'에 따라 학업 성취가 천차만별이라는 연구도 있다. 우수한 학생들이 차터스쿨로 몰리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부족한 취약계층이 일반 공립학교에 남겨져 '교육의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계층에 따른 교육 불평등 지방으로까지 확대" 우려들
'교육자유특구'는 정부 교육개혁 정책 중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반발이 가장 크다. 공교육 시스템을 벗어난 학교 유형이 많아지고 남겨진 일반 공립학교는 황폐화될 거라는 비판이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교육자유특구로 지정돼 우수 학생을 경쟁선발하면 상위 10%의 학교는 살아나고 나머지 90%의 학교는 죽이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는 "지역마다 성적 중심의 선발체제가 강화될 것"이라며 "그에 따라 사교육 팽창이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자칫 학생 선발의 자유만 넓히는 결과를 초래해 진학 경쟁을 조기에 시작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명문학교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기존 공교육 시스템을 강화해 지역 일반고의 역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이미 지역에 거점형 공립고 등 시설 좋은 학교가 많은데 문제는 학생 모집이 안 되는 것"이라며 "새롭게 다양한 학교가 만들어진다 해도 지역 학생 모집이 어렵고, 결국 수도권에서 이주해 올 텐데 그러면 부작용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구 소장은 "2025년 전면 시행을 앞둔 고교학점제가 내실 있게 시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지역의 특색 있는 교육을 받고 지역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이를 통해 일반고 역량을 충분히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김민희 대구대 교수도 "이미 지역에 명문대 진학을 위한 목적의 학교는 많다"며 "좋은 학교만 세운다고 지역 교육이 발전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15명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낮추고, 교사가 학생의 성장 기록을 갖고 맞춤형 학습·진로 상담을 가능하게 하는 등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개혁 자문단(가나다 순)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 김민희 대구대 교수, 김병주 영남대 교수, 민세진 동국대 교수,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반상진 전북대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 이범 교육평론가,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 조상식 동국대 교수
※글 싣는 순서
①공정한 출발선은 가능한가
②잠자는 교실 깨우려면 필요한 것들
③위기의 대학, 재도약의 필수조건
④실효성 있는 인재 양성 정책의 실마리
⑤교육계 뒤흔들 남은 쟁점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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