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묻지마 지지’가 한국 정치를 양심의 파산으로 몰고 간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법’ 처리를 위해 위장 탈당한 민형배 의원을 복당시킨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의원이 가짜로 탈당해 국회와 국회법을 능멸하는 꼼수를 마음대로 저지른 뒤 일이 끝나자 아무 일 없었던 듯 복당한 것은 그 의원과 그 정당의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이 돼야 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정치가 거의 매일 저지르는 거짓과 불법, 편법, 파렴치에 익숙해진 우리 사회에선 이조차 또 한 번의 추태 정도로 넘어가고 있다.
민 의원 사건은 정당이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사기(詐欺)를 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친민주당으로 구성된 헌재조차 그의 위장 탈당을 위법으로 판단했지만, 민주당과 민 의원은 이를 보란 듯이 무시했다. 아무리 한국 정치가 문제투성이라고 해도 이런 지경까지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과거엔 정당과 의원이 국민의 시선을 두려워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른바 ‘의원 꿔주기’라는 꼼수를 벌였을 때 관련 정당들은 국민 비판을 받고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최근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양쪽 지지층이 자기 편에게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면서 정치권이 외부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대장동 사건을 ‘윤석열 게이트’라고 믿는 사람이 40% 가까이 된다는 조사가 나오는 실정이다. 김의겸 의원의 대통령과 법무장관 ‘청담동 술자리’ 주장은 완전한 가짜 뉴스로 드러났지만, 오히려 후원금이 크게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 가짜 뉴스를 퍼뜨린 유튜버는 돈을 벌었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의 핵심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귀국한 인천공항에는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이 모여 “송영길 파이팅”을 외쳤다. 이제 민주당은 무슨 일을 벌여도 지지층이 떠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 같다.
이런 확신은 민주당을 더 대담하게 만들고 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김건희 여사가 심장병 어린이와 함께 찍은 사진과 관련해 가짜 뉴스를 퍼뜨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 가짜 뉴스를 계속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 대표까지 동조했다. 대통령 관저 관련 가짜 뉴스를 퍼뜨린 사람들은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단체 행사까지 열었다. 윤 대통령이 워싱턴 공항에 나온 화동(花童)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볼에 입을 맞춘 것을 두고 장경태 위원이 ‘성적 학대’라고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상식 있는 사람이면 혀를 찰 일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무조건 지지하는 계층만을 보면서 스토킹과 같은 정치 행위를 계속한다. 실제로 열성 지지층은 이들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다. 정치 양극화가 심한 나라에서도 이런 저질 정치는 한국뿐일 것이다.
‘묻지마 지지층’이 대규모로 존재하는 한 정치의 자정 기능은 작동할 수 없다. 앞으로 민형배 복당과 같은 일은 다반사로 벌어지게 돼 있다. 한국 정치는 양심의 파산에 이르렀다.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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