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우크라이나 찬가’는 아니더라도
‘카탈로니아 찬가’ 통해
겉으론 평화, 실제론 독재 지원한
소련의 위선적 행태 비판
한국 진보 좌파도 마찬가지
우크라 침략 러시아엔 침묵하고
우리 정부에만 ‘살인 수출’ 비난
그대들은 침략자 편인가
“나는 신문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에 갔다. 하지만 나는 가자마자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1936년 12월, 조지 오웰은 스페인의 항구 도시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스페인 북동부, 카탈로니아의 중심 도시인 그곳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오웰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로서는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그 전쟁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스페인은 군사, 행정 체계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나라였다. 공화파 정부군뿐 아니라 반란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반란군은 프랑코 장군을 중심으로 한 지휘 체계가 작동하고 있었던 반면, 공화파는 내부적으로 사분오열 되어 있었다. 결국 반란군이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스페인은 40년간 프랑코의 독재에 시달리게 된다.
조지 오웰이 애정을 느끼고 동조한 그들, 순수한 사회주의자 내지 무정부주의자들은 소수파에 불과했다. 좌파 정부를 이룬 집단 중 가장 힘이 센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이었는데, 소련의 지원과 지령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에서 이길 생각이 없었다. 독소불가침조약이 발표되기 전이었지만 스탈린과 히틀러는 이미 서로 침공하지 않기로 물밑에서 교감을 나누고 있었고, 히틀러는 프랑코를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탈린에게 프랑코는 ‘친구의 동생’쯤 되는, 굳이 혼쭐 낼 필요가 없는 상대였던 셈이다.
소련은 스페인에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자신들의 말을 듣는 독재 정권이 세워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공산주의의 중심 국가라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공화파를 지원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프랑코의 승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아름다운 이상은 지정학과 국제 정치, 제국주의적 야욕 앞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지 오웰은 <카탈로니아 찬가>를 통해 소련과 그 지원을 받는 공산당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혁명적 그룹들을 제외한 전 세계가 스페인의 혁명을 막기로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소련을 배후에 둔 공산당은 전력을 기울여 혁명에 반대했다.”
2023년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을 비롯한 구 공산권 국가들의 비호를 받고 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의 무기 대여와 정보 제공에 힘입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다. 전쟁 초기 몇몇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이 우크라이나의 ‘국제 여단’에 입대해 함께 전쟁을 수행한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스페인 내전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작은 세계대전’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자칭 진보 좌파 민주 진영 역시 마치 스페인 내전 당시 공산주의자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말로는 세계 평화를 원한다면서 침략 전쟁을 벌인 이들을 맹렬하게 비난하지 않는다.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자유 진영 국가로서 당연한 일인데, 그런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만으로도 ‘살인 수출’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침략당한 나라를 향해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을 뽑아 침략을 자초했다’고 우롱한 이를 정치적 지도자로 삼고 있는 집단이니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출간 당시 차갑게 외면당한 책이다. 조지 오웰의 기존 독자층인 진보 좌파 세력에게 스페인 내전 당시 소련과 공산당의 제국주의적 행태는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었다. <동물농장>과 <1984>가 큰 성공을 거두고, 소련 내의 인권 침해와 학살, 숙청 등이 가시화된 다음에야 <카탈로니아 찬가>는 온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맥락을 알아도 모르는 척, 한국의 진보는 오늘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외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조지 오웰을 존경한다는 사람들이 할 짓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찬가’를 부르며 의용군으로 참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러시아에 대한 여러 국제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무기 지원을 추가한다 해서 더 달라질 것도 없다. ‘인도적 지원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은 중립과 평화를 외치는 척 침략자의 편을 드는 소리다. 조지 오웰이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던 것은 바로 그런 ‘진보’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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