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에 2년간 우선 매수권… 매달 102만원 지원
앞으로 전세 사기 피해자들도 살던 주택에 대한 경매를 미뤄달라고 법원에 직접 요청할 수 있다. 또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으면 재해·재난으로 인한 이재민 수준으로 간주돼 1인 가구 기준 매달 최대 102만원의 생계·주거비를 6개월간 지원받을 수도 있다.
국토교통부 등 정부 관계 부처는 2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국민의힘은 정부 대책의 법적 근거를 담은 ‘전세 사기 피해 특별법’을 이날 발의해 공포 후 즉시 시행하기로 했다. 다만 통상 전세 계약 기간이 2년인 것을 감안해, 이 법도 향후 2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특별법에는 ‘전세 사기 피해자’의 판단 기준도 담겼다.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임대인에 대한 수사 착수를 비롯해 ‘사기 의도’를 의심할 만한 상황이 발생하는 등 6가지 요건<<b>그래픽>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전세 사기 피해자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법률·세무 전문가와 관계 기관으로 구성된 국토부 산하 피해지원위원회에서 맡는다. 단순한 보증금 미반환 사고와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 사기라는 매우 예외적인 대상에 대해서만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원칙”이라고 했다. 특별법은 28일 국토교통위원회 전체 회의를 거쳐 다음 달 중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정부가 27일 발표한 전세 사기 대책은 피해자 주거 안정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인천 미추홀구에서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 3명이 경매로 인한 강제 퇴거와 생활비 부족으로 기본적 생활이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 주거지를 확보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세 감면·저리 대출·생계비 패키지 지원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 주거지를 보장해 주기 위해 정부는 대출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연 가구 소득 7000만원 이하인 피해자가 우선 매수권을 행사해 주택을 낙찰받으면 1.85~2.7%의 금리로 4억원까지 최장 30년간 대출받을 수 있다. 연 가구 소득이 7000만원을 넘는 경우도 특례보금자리론으로 3.65~3.95% 금리에 최대 5억원 대출이 가능하다. 대출 규제인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적용받지 않는다. 취득세는 200만원까지 면제되고, 재산세도 3년간 25~50% 감면받는다.
주택을 매입하기 어려운 피해자에게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대신 우선 매수권을 행사해 경매에서 낙찰받고, 이후 최대 20년간 시세의 30~50%로 임대한다. 집 상태가 좋지 않아, LH가 피해 주택을 사들이기 어려운 경우에는 피해자에게 가까운 공공 임대주택에 우선 입주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정부는 또 재난·재해 발생 시 활용하는 긴급 복지 지원 제도를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도 적용하기로 했다. 대도시 1인 가구 기준으로 월소득 156만원, 재산 3억1000만원 이하라면 생계비(월 62만원), 의료비(300만원 이내·최대 2회), 주거비(월 40만원)를 6개월~1년간 받을 수 있다. 신용 대출도 3% 금리로 최대 1200만원까지 가능하다.
한편, 이날 국회에서는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지방세보다 세입자 보증금을 먼저 갚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2년간 한시적… “일부 피해자, 지원 못 받나”
정부는 ‘전세 사기 특별법’을 2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보통 전세 계약 기간이 2년이고, 최근 내놓은 전세 사기 방지 대책 때문에 앞으로 체결되는 계약에선 대규모 전세 사기가 드물 것이라는 점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세 계약이 1년 이상 남은 피해자들이 지원을 못 받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별법 지원을 받으려면, 전세 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가 시작됐거나, 최소한 경매로 넘길 법적 권한을 세입자가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세입자가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 보증금 반환 소송을 제기해 법원 판결을 받아내야 하는데, 길게는 1년 이상 걸린다. 김창범 변호사는 “모든 피해자가 이른 시일 안에 경매 권한을 받아낼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며 “2년 후 특별법 시한이 끝나 지원을 못 받는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 대책 위원회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특별법은 지원 대상이 너무 협소하고 피해자 심사 및 인정 절차도 까다롭다”고 밝혔다.
LH의 예산을 전세 사기 피해 지원에 활용하는 것을 두고, 일부 청년층 사이에서 ‘역차별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최근 주거비가 치솟으면서 올 1분기 수도권 청년 매입임대주택은 평균 경쟁률 45대1로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수요가 많다. 전세 사기 피해 지원에 쓰이는 돈이 늘면, 일반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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