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20년간 산불 진화 헬기는 고작 2대 늘었다… 임도는 선진국의 10분의 1 불과”
11일 강릉에 큰 산불이 났다. 아침 8시 30분쯤 강릉 난곡동에서 발화했는데 초속 30m나 되는 강한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번졌다. 현장에 투입된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 안찬각(동부산림청 소속) 팀장은 “그렇게 강한 바람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성인이 제자리에서 눈 감고 있으면 넘어질 정도였다는 것이다. 바람이 거세 헬기가 출동하지 못하다가 오후 들어 바람이 잦아들면서 초대형·대형 다섯 대가 진화에 참여해 산불 제압이 가능했다. 때마침 오후 3시쯤부터 소나기도 내렸다. 그러나 축구장 면적 530배인 379㏊가 잿더미가 됐다. 민가 지역이라 인적, 물적 피해가 컸다. 정부는 12일 강릉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지난 24일 남성현 산림청장과 길게 통화했다. 그는 “강릉 산불을 비가 내려 잡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전에 지상 진화가 상당히 이뤄졌다”고 했다. 도시 외곽 야산이라 일반 도로가 많아 진화 차량들이 접근 가능했다는 것이다.
지상 진화의 주력은 산불재난특수진화대다. 현재 435명이 거점 다섯 곳(원주 강릉 안동 공주 남원)에 분산 근무하고 있다. 주 장비는 1t짜리 소형 산불 진화차다. 산불 진화차 물탱크는 용량 500L인데 이 물을 진화대원들이 13㎜ 호스로 연결해 산불 지점까지 보낸다. 문제는 국내 산림엔 산불 진화차가 움직일 수 있는 임도(林道)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험난한 산악 지형에선 임도가 없으면 진화차와 진화대원이 접근할 수 없다. 임도가 있으면 임도 자체가 방화선 역할도 한다. 우리 산림의 ㏊당 임도는 3.97m에 불과하다. 비슷한 지형인 오스트리아가 50m, 일본도 23.5m다. 독일은 54m나 된다. 환경 단체들이 임도가 산림 생태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반대해온 탓이 크다. 남 청장은 “임도 개설을 위해 훼손되는 산림보다 임도가 없어 산불로 타는 산림이 수십, 수백 배 될 것”이라고 했다.
임도만 있으면 산림청 보유 고성능 산불진화차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대당 8억원짜리 벤츠사 제품인 고성능 진화차는 3500L 물탱크를 채우고 탱크처럼 누비고 다니면서 호스 4개로 물을 분당 800L 뿌릴 수 있다. 지난달 8일 합천 산불 때 성능을 제대로 보여줬다. 오후 2시쯤 담배꽁초 때문에 일어난 합천 산불은 오후 7시 해 질 무렵 진화율이 10%에 불과했다. 헬기가 28대 동원됐는데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진화율은 92%에 달했다. 임도가 잘 확보돼 있어 산림청 보유 고성능 진화차 3대가 모두 제 역량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반면 사흘 뒤인 3월 11일 하동군 화개면 산불은 헬기 20여 대가 출동했지만 일몰 이후엔 진화 작업이 전혀 진전되지 못했다. 국립공원 지역이라 임도가 전무했다. 있는 것은 탐방로 정도여서 산불 진화차들이 접근할 수 없었다. 다행히 12일 오전 비가 내려 위기를 넘겼다. 작년 5월 31일 밀양 산불도 3박 4일이나 탔다. 밀양 구치소 재소자들을 대구 교도소로 이송해야 했다. 임도가 없어 밤만 되면 진화 작업이 멈춰 섰다. 전국에서 헬기가 57대나 집결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밤사이 숲을 태워 골짜기가 연무로 가득 차는 바람에 헬기가 움직일 수 없었다. 겨우 두 대가 진화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최근 10년을 기준으로 보면, 3~5월에 전체 산불의 57%가 발생했다고 산림청은 밝혔다. 작년은 유독 산불이 심한 해였다. 작년 4월 한 달만 177건이 발생했다. 작년 3월 4일 시작된 울진·삼척 산불은 숲 1만6302㏊(1482만평)를 태웠다. 발화에서 진화까지 213시간 43분이 걸린 역대 최장 지속 산불이었다. 봄철 산불 가운데서도 규모가 큰 대형 산불은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 집중된다. 봄엔 한반도 남쪽에 고기압, 북쪽엔 저기압이 자리 잡는다. 그 사이 기압골에 강한 편서풍이 형성된다. 이 편서풍이 백두대간을 넘으면서 고온 건조해지고 바람 세기가 강해진다. 그래서 양간지풍(양양과 간성 사이 바람), 또는 양강지풍(양양과 강릉 사이)이란 현상이 생겨난다. 1991년 이후 지난해까지 대형 산불 66건 가운데 35건이 강원도 동해안 쪽에서 발생했다. 산불이 초속 20m 이상 태풍급 강풍을 타면 순식간에 초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 2019년 고성·속초 산불의 순간 최고 풍속이 35.6m였는데 발화지에서 7.7㎞ 떨어진 해안까지 확산하는 데 90분도 안 걸렸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교수 생활 5년을 빼고는 40년 산림청 공무원 생활을 했다. 20년 전인 2003년엔 산림항공본부장을 맡았다. 그 20년 전, 산림청 보유 헬기가 46대였다고 한다. 지금은 48대다. 기종(機種) 구성은 달라졌지만 20년 사이 고작 2대 늘었으니 말이 안 된다. 지난 2일엔 하루에 산불이 34건 발생했다. 남 청장은 산불 한 건에 적어도 헬기 2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2일 전국 산불에 68대는 있어야 했다. 산림청이 48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정비 등 요인으로 20% 이상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최대로 가동해봐야 40대를 동원할 수 있을 뿐이다. 지자체들이 빌려 쓰는 헬기가 72대 있긴 하지만, 성능이 떨어진다. 소방청 헬기는 주로 인명 구조용이다.
산림청은 산불 진화 때 헬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70%로 평가한다. 진화 인력이 수백 명 투입돼도 산불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산림청 산불 진화 헬기 48대 가운데 주력은 러시아 쿠마페(KumAPE)사가 제작한 ‘카모프(KAMOV)’란 헬기다. 30대 보유 중이다. 카모프 헬기는 물 3000L를 동체에 설치된 탱크에 담을 수 있는 대형 헬기다. 그보다 더 큰 초대형 헬기로 미국 에릭슨사의 S-64 기종이 있는데 6대 보유하고 있다. 배 부위의 물탱크(belly tank)로 물을 8000L 빨아들이는 데 45초면 된다고 한다. 시간이 생명인 산불 진화에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쿠마페 헬기는 250억원, 에릭슨이 550억원쯤 한다.
남 청장은 “우리 숲은 산불에 탈 연료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지난 50여 년 인공적으로 심은 나무가 총 120억 그루 된다. 하지만 숲 가꾸기를 소홀히 했다. 나무는 솎아주고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잡다한 나무가 가득 찬 빽빽한 숲은 경제적 가치도 없다. 목재 수요의 84%를 수입에 의존하는 이유다. 딱 한 번 우리가 대대적으로 숲 가꾸기를 한 것은 1998년 IMF 때다. 일자리 정책으로 숲 가꾸기를 추진했다. 심기만 하고 방치한 숲은 산불에 너무 취약하다.
산불은 사람이 낸다
4월 5일 식목일은 나무 심는 날이다. 그런데 나무 심자는 식목일이면 산림청 직원들은 되레 긴장했다. 유독 산불이 많이 났다. ‘식목일 산불’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61건이나 됐다. 그런데 논란 끝에 2006년부터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그 후 2006년부터 2022년까지 17년간 식목일 산불은 84건 발생했다. 공휴일이었던 때에 비해 4분의 1로 떨어졌다. 공휴일이면 사람들이 산과 들로 나가기 때문이다.
결국 산불은 사람이 내는 것이다. 최근 10년 낙뢰 불씨로 발생, 또는 발생 추정 산불은 43건뿐이었다. 산불 중 입산자 실화가 31.8%, 논·밭두렁 소각이 12.5%, 쓰레기 소각이 12.7%로 전체 산불의 절반 이상이 사람에게서 비롯됐다. 겨우내 집 안에 웅크렸던 사람들이 날씨가 풀리면 야외로 나간다. 산 인근 농민들은 농사를 위해 논·밭두렁을 태운다. 70대, 80대 시골 노인들은 고춧대, 깻대 등을 뽑아내기가 힘에 부친다. 지난해 수확하고 남아 있는 뿌리와 줄기 등 영농 부산물을 손으로 걷어내기 힘들어 불을 내 해결하려는 것이다. 산림청은 고육지책으로 농산물 파쇄기 100대를 빌려줬다. 산 아래 마을의 고령 농부들을 위해 고추, 콩 등 영농 부산물 파쇄를 도와주고 있다. 충북 영동군도 파쇄기로 농민들을 돕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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