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말해뒀죠, 묘비명은 ‘댄싱 퀸’... “신나게 춤춰 봐, 인생은 멋진 거야!”
35년차 뮤지컬 배우 최정원
뮤지컬 ‘맘마 미아’에 주인공 ‘도나’로 처음 합류한 2007년 1월, 첫 공연을 마친 밤이었다. 배우 최정원(53)은 식은땀을 흘리며 앓다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쓸개관에 큰 담석이 세 개나 있다고, 당장 배 열고 수술해야 한다는 거예요. 당장이라도 터질 수 있다고.”
이제 공연을 시작했는데, 자신을 기다리는 관객을 생각하면 거기서 멈출 순 없었다. “진통제 맞으며 일주일만 버텨 보겠다”고 우겨서 계속 무대에 섰다. 입원한 병원에서 극장으로 출퇴근하며 두 달 넘는 공연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담석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어느 날인가 ‘댄싱 퀸’의 첫 부분 ‘신나게 춤춰 봐’를 부르는데 배에서 ‘꼬로록~’ 소리가 들렸거든요. 그때 다 녹아버렸나? 하하하.”
지난 16년간 최정원은 1030여 회 ‘도나’가 돼 춤추고 노래 불렀다. ‘맘마 미아’ 공연이 진행 중인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26일 만난 그는 “‘시카고’가 죽기 전 마지막 한 번 더 하고 싶은 뮤지컬이라면 ‘맘마 미아’는 내가 이걸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딸에게 얘기해놨어요. 나중에 엄마 묘비엔 ‘댄싱 퀸’ 가사를 새겨달라고. ‘신나게 춤춰 봐, 인생은 멋진 거야. 기억해, 넌 정말 최고의 댄싱 퀸!’”
딸(25)은 지금이 딱 ‘맘마 미아’에서 제 결혼식을 앞두고 ‘아빠 후보’ 세 명을 불러 모으는 ‘도나’의 딸 ‘소피’ 또래다. 경험하지 않은 걸 표현하려 애써야 하는 다른 작품과 달리, 최정원은 ‘도나’가 될 때 “엄마인 나의 모습, 일상을 그대로 녹여 넣을 수 있다”고 했다. “딸이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었어요. 뮤지컬 ‘고스트’에 영매사 ‘오다 메’로 나갈 때였는데 무대 위에서 코믹한 연기를 하다가도 분장실에만 앉으면 하염없이 울었죠. ‘어릴 때 책을 많이 못 읽어줘 그런가’ ‘잘못 키운 건가’ ‘내가 잘못 산 건가’….”
매일 6시 반이면 일어나는 그는 늘 딸의 머리를 빗기고 땋아줬다. 엄마의 ‘맘마 미아’ 공연 이력과 함께 딸도 성장했다. 이제 다 큰 딸은 무대 위 ‘도나’가 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부르는 노래에 눈물 흘린다. “사람들은 엄마 연기가 재밌다고 웃는데 자기는 계속 눈물이 난대요. 다 엄마랑 자기 얘기 같다고.”
지난 16년, ‘맘마 미아’는 그에게 웃음도 눈물도 안겨줬다. 2008년 최정원은 50국 16개 언어로 만들어진 이 뮤지컬 프로덕션 가운데 ‘최고의 도나’로 뽑혀 스웨덴 말뫼 아레나의 1만2000여 관중을 앞에 두고 한국어로 ‘맘마 미아’를 불렀다. 그는 “자존감 엄청 올라갔다. 출연료도 월드 클래스더라”며 웃었다.
2020년 코로나 상황 악화로 공연을 접을 땐 “애인에게 이별 통보 받은 듯” 눈물만 뚝뚝 흘렸다. “평생 해온 춤과 노래를 못 하니 병이 날 것 같았어요. 날 위한 운동도 하고 식단도 조절하며 체력을 키웠죠. 그 덕분에 지금도 이렇게 씩씩하게 무대를 지키는가 봐요.”
지금도 공연 시작 최소 4시간 전에 나와서 가장 먼저 무대에 불을 켠다. 그는 “최소 두 시간 반은 워밍업을 해서 몸이 후끈 달아올라야 잘 풀리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낮 공연 뒤 바로 밤 공연 하면 제일 잘해요. 많이 하면 남들은 지친다는데 전 많이 할수록 오히려 채워져요. 신체 구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가?”
특히 이 공연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이긴 사람만이 모든 걸 다 갖죠(The Winner Takes It All)’까지 세 곡을 연달아 부르는 부분은 최정원에게 ‘전율 3종 세트’다. “오감이 활짝 피어나요. 손가락 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미칠 것처럼 행복해요. 남들이 ‘저걸 어떻게 해?’ 하는 걸 철인 3종 경기 하듯 해내는 게 좋아요. 피겨 선수 김연아처럼, 축구 선수 박지성 손흥민처럼 쉼 없이.” 제작사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는 그를 “최스타”라고 부른다. 무대를 장악하는 압도적 카리스마는 지금도 따를 자가 없다. 그가 등장하면 무대 위 다른 모든 요소는 소품처럼 보인다.
최정원은 1989년 데뷔 때 자신의 첫 팬에게 써 줬던 멘트를 아직도 즐겨 쓴다. ‘언제나 처음처럼, 처음은 언제나처럼’. 그는 1000번 넘게 한 ‘맘마 미아’도 “매일 처음 하는 공연처럼 무대에 오르고, 마지막인 것처럼 100% 모든 것을 불사른다”며 “난 뮤지컬 배우로 살아온 지난 35년간 한 번도 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맨날 노는 것 같다”며 또 웃었다.
“와인은 하루 한 잔만 마시고, 양배추 많이 삶아 먹고 브로콜리 많이 먹을 거예요. 여배우가 나이 들어도 계속 무대 뒤에서 훌륭히 제 몫을 해낼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앞으로도 쭉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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