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유행민감] 흑인 클레오파트라? 다큐가 아니라 정치다
문제는 드라마 아닌 다큐… 이게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낮은 코로도 역사 바꾼 흑인 여왕 아마니레나스처럼
진짜 ‘검은 역사’를 발굴하라
어머니는 미인이다. 젊은 시절 별명은 마산의 김지미였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따르면 어머니가 시골 친척 집에 갈 때마다 남학생들이 어머니를 보려 담장을 기웃거렸다고 한다. 일화도 하나 있다. 좀 이른 나이에 결혼한 어머니는 나를 낳고 몸조리를 하고 있었다. 단골 미용실 원장이 물어물어 신혼집을 찾아왔다고 한다. 원장은 어머니 옆의 나를 보고는 주저앉아 울부짖었단다. “아이고 내가 애자씨를 미스 경남 내보낼라꼬 그리 찾았는데 와 이리 결혼을 빨리 했노.”
독자 중에서는 이 칼럼의 연재를 알리는 신문에 실린 내 사진을 본 분도 계실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쯤 매우 의아해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마산을 호령하던 미인의 아들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외모의 남자다. 아버지는 투박하고 시커먼 얼굴에 쌍꺼풀이 없는 남자다. 나도 아버지를 똑 닮았다. 다만 자신 있는 부위가 하나는 있다. 코다. 어머니의 오뚝한 코를 약간은 물려받았다. 확실히 코는 전통적인 미인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구글에 ‘연예인 성형 전’이라는 키워드를 넣고 “걔도 수술하기 전에는 납작코였네”라고 비웃으며 낮은 코의 자존감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미인에게 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어린 시절 읽은 역사책에서였다. 프랑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의 말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가 미인이 아니었다면 안토니우스는 그에게 반하지 않았을 것이다.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제국을 건설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다. 어린 시절 본 영화 <클레오파트라>(1963)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코가 도도하게 높았다. 내 머릿속 클레오파트라는 언제나 코가 높은 백인이었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클레오파트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악티움 해전도 이보다 격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넷플릭스가 5월 10일 방영할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 예고편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흑인 배우 제이다 핑킷 스미스가 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많은 장면을 재연 배우 연기로 채웠다. 클레오파트라는 흑인 배우 아델 제임스가 연기한다. 역사적 인물을 소수 인종으로 대체하는 건 지난 몇 년간 미국 문화계의 트렌드였다. 뮤지컬 <해밀턴>은 미국 건국 주역들을 흑인과 라티노 등 소수 인종으로 캐스팅하고 힙합을 내세워 큰 성공을 거뒀다. 백인만으로 채워진 미국 역사를 뒤집어 보자는 의미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브리저튼>은 18세기 시대극 남자 주인공을 흑인으로 캐스팅했다. 백인 일색 시대극을 살짝 비튼 이 설정을 시청자들은 받아들였다. 어차피 창작물이다. 그 속에서 인종 다양성을 실험해 보는 것은 꽤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일이다.
다만 <퀸 클레오파트라>는 드라마가 아니다.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한 건 고증이다. 역사에 정설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래도 정설에 따르자면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인물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근친혼으로 대를 이었다. 클레오파트라도 동생과 결혼했다. 그는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사이에서도 아이들을 낳았고, 그들이 흑인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사하라 사막으로 남아프리카와 단절된 이집트 주류 인종은 백인에 가깝다.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가장 분노하고 있는 곳은 이집트다. 한 변호사는 공개를 금지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집트 유물관리 장관을 지낸 학자 자히 하와스는 “흑인으로 알려진 유일한 통치자들은 25왕조인 쿠시 왕조뿐”이라며 “넷플릭스가 이집트 문명 기원이 흑인이라는 기만적 사실을 퍼뜨린다”고 분노했다. 솔직히 이건 나와 별로 관계가 없는 이야기다. 남의 나라 사람들이 남의 나라 고대 인물을 두고 싸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이유는 별로 없다. <퀸 클레오파트라>가 공개된다고 전 세계 역사책이 갑자기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으로 묘사할 리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할리우드는 원죄가 있다. 펄 벅 원작을 영화화한 <대지>(1937)의 주인공은 분장한 백인 배우들이었다. <정복자>(1956)에서는 존 웨인이 칭기즈칸을 연기했다. 나는 오드리 헵번의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을 사랑하지만 백인 배우 미키 루니가 일본인을 연기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치를 떨고 만다.
유색 인종을 백인이 연기하는 ‘화이트 워싱’의 역사를 반성하는 일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런데 ‘화이트 워싱’을 반성하는 방식이 꼭 역사를 뒤엎는 ‘블랙 워싱’이어야 할까. 어쩌면 <퀸 클레오파트라>는 일종의 정치적 행동일 것이다. 제작진의 반응을 봐도 그렇다. 주연 배우는 소셜미디어로 “배역이 마음에 안 들면 보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흑인 여성 연출자는 “클레오파트라를 흑인 여배우가 연기하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운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들은 지금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이 아니다. 정치적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주류 역사에서 무시된 흑인의 역사를 발굴하고 인종적 자긍심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역사적 실존 인물을 흑인으로 바꾸는 정치적 운동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인가라는 의문은 남는다.
어쩌면 진정으로 필요한 일은 하얀색으로 칠해진 역사를 검은색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진짜 검은 역사를 발굴하는 일일 것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뒤 이집트와 오랫동안 교류하던 아프리카 누비아 지역의 쿠시 왕국은 나일강을 북상해 로마 왕국과 전쟁을 벌였다. 쿠시-로마 전쟁이다. 전쟁을 이끈 것은 쿠시 왕국의 아마니레나스 여왕이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지만 남성을 능가하는 당대의 전사였다. 나는 흑인 <퀸 클레오파트라>보다는 <퀸 아마니레나스>가 보고 싶다. 그는 분명히 아프리카 흑인이었다. 낮은 코로도 역사를 바꾸었다. 자, 나는 여기서 이 글 시작 부분에 쓴 코에 대한 이야기를 반성하려 한다. 아름다움의 상징은 코가 아니다. 높은 코를 미인의 상징이라고 말하던 시대는 끝나야 마땅하다.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도 다양성은 필요하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 동생은 성형외과 의사다. 나는 지금 동생의 직업과 그의 가상 미래 자산에 막대한 손해를 끼칠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정말이지 진심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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