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9] 가장 표준적인 회색의 하늘
인간의 순응은 의식하거나 결심하지 않아도 시작되는 감각 단계에서부터 이루어진다. 생존에 필요한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기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기온이 떨어지면 땀구멍을 닫아서 체온을 유지하는 것처럼 감각 작용을 통한 순응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에서 불수의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자동화된 기계처럼 반응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후에라도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각하기 어렵다.
KDK(김도균, 1973~ ) 작가는 ‘g’ 연작(2015~2020)에서 우리 눈의 순응 과정을 역설적으로 자각시킨다. 연작에 포함된 3000 장의 하늘은 다 회색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흑백사진이니 색은 없고 밝기만 있다. 그의 하늘 사진은 빛이 많으면 광량을 줄이고 반대로 빛이 적으면 광량을 늘려서 모든 장면을 ‘중간 회색(middle gray)’으로 만드는 적정 노출과 순응의 원리가 보정 없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 연작에 포함된 사진들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찍혔지만 모두 중간 회색으로 수렴된 밝기를 보여준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카메라의 노출 기능을 ‘자동’으로 맞추어 놓고 프레임 가득 먼 하늘을 채워서 셔터를 누르면 이런 사진이 나온다. 먹구름이 낀 흐린 날이거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거나 상관없다. 작가는 이러한 사진의 법칙을 강조하기 위해서 촬영 일시와 조리개 크기, 셔터 스피드, GPS 위치 정보 등을 나열한 숫자와 문자로 작품의 제목을 달았다.
카메라의 자동 노출 기능은 애초에 육안의 명암 순응을 본떠서 설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DK의 하늘은 낯설고 특별하다. 원래 하늘은 밝은 것이라는 생각에 부합하지 않아서다. 우리 눈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빛에 순응하는 것은 주어진 여건에서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고 선명하게 보기 위한 노력이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제대로 볼 순 없다.
우리는 시세포의 순응만으로 세상을 보는 대신, 때론 알고 있는 것을 동원해서 보이는 것을 해석한다. 그래서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이것이 완벽한 눈을 가지지 못한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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