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인수합병, 반독점 칼날에 줄줄이 무산
영국 반(反)독점 규제 기관인 경쟁시장청(CMA)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MS)가 추진하는 IT 업계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을 가로막았다. IT 업계에선 빅테크 회사 간 대규모 인수합병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MA는 26일(현지 시각) “MS가 687억달러(약 92조원)를 들여 추진해온 비디오 게임사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허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CMA는 “MS가 이미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의 60~70%를 차지하고 있는데 ‘콜 오브 듀티’와 ‘오버워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블리자드의 중요 게임 콘텐츠의 통제권까지 갖게 되면 게임 시장의 혁신이 위축되고, 이용자 선택권이 제한될 것”이라고 했다. CMA에 앞서 미국 FTC도 지난 2월 MS의 블리자드 인수 반대 의사를 밝히며 소송을 제기했다. MS가 블리자드 인수를 완료하려면 영국, 미국, 유럽연합(EU)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미국과 영국이 잇따라 제동을 걸면서 인수가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다.
◇빅테크 M&A 시대 끝났다
MS와 블리자드는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 브래드 스미드 MS 부회장은 “CMA는 경쟁 저하 우려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실용적 방법을 거부했다”며 “이 같은 결정은 영국의 기술 혁신과 투자를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블리자드 대변인도 “CMA의 보고는 IT 사업을 하기에 매력적인 나라가 되겠다는 영국의 야심에 위배된다”고 반박했다. 이번 CMA 결정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빅테크 회사 간 M&A 시대가 사실상 끝났다는 신호”라고 했다. 최근 각국 정부가 주요 기업 인수합병에 계속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FTC는 지난 2021년 12월 세계 최대 그래픽 반도체(GPU) 기업 엔비디아의 모바일 반도체 설계 회사 ARM 인수에 대해 “반도체 산업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며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했다. 결국 엔비디아는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FTC는 작년 1월에는 방산 업체 록히드마틴의 로켓 엔진 제조 업체 에어로젯 로켓다인 인수를 막았다. 영국 CMA는 지난해 10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회사 메타의 GIF 이미지 파일 공유 플랫폼 지피 인수합병을 무효화하며 강제 매각을 명령했다. 이달 들어서는 아마존의 로봇 업체 아이로봇 인수 계획을 조사하고 있다.
◇빅테크 규제는 계속된다
과거 빅테크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애플은 2000년 이후 100여 건의 크고 작은 인수합병을 단행하며 AI, 반도체 경쟁력을 키우고 자체 생태계를 넓혀왔다. 페이스북 역시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탄탄한 서비스 기업들을 흡수해 거대 소셜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구글도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 모토롤라 등을 합병했다.
테크 업계에서는 각국 정부가 빅테크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반독점 권한을 활용하는 것으로 본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하원과 행정부는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 법안과 행정 명령을 쏟아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FTC 위원장에 임명된 리나 칸 위원장은 ‘빅테크 저승사자’로 불리는 대표적 반독점주의자이다. 칸은 페이스북 모기업 메타의 가상현실 스타트업 인수를 막도록 법원에 요청하는 등 빅테크의 사업 확장에 공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있다.
이런 움직임 때문에 한국 기업들도 고심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신성장 동력 발굴에 인수합병을 적극 활용해왔다. 삼성전자가 전장 업체 하만을 인수했고, 현대차가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몇 년 전부터 “반도체와 바이오, 신성장 IT 분야에서 인수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각국의 반독점 움직임 강화로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영역에서의 인수합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인수합병은 사업을 영위하는 주요 국가 경쟁 당국의 허가를 모두 받아야 가능하다”면서 “일부 국가에서 의도적으로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인수 후보군을 고르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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