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금연이 제일 쉽다, 수백 번도 더해봤다”

최규민 경제부 차장 2023. 4.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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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12조원 내는 한국 흡연자
불가촉천민 취급 받지 않나
10명 중 6명 실패하지만
잃을 것도 없다, 다시 도전을!

사실, 진작 금연에 도전했어야 할 이유는 백만 가지쯤 됐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아지면서 흡연이 몸에 무리를 준다는 게 실감이 됐다. 폐활량이 줄어 몇 ㎞만 달려도 숨이 가빴고, 목도 자주 잠겼다. 담배를 피우며 잡담하던 무리에서는 계속 이탈자가 생겼다.

밤중에 담배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아 배회하는 것도 몹시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슬리퍼를 끌고 적막한 거리를 걷노라면 이 해롭고 보잘것없는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젊은 시절 소문난 애연가였으나, 작가로서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담배를 끊고 수영과 달리기를 시작했다. 바둑기사 조훈현은 한 번 대국에 ‘장미’ 담배 세 갑을 피우는 골초였으나 애제자 이창호에게 연패하자 단숨에 담배를 끊었다. 이런 결기가 비범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을 가른다.

가족들에게도 흡연은 면목 없는 일이었다. 한 번도 출세하라고 잔소리한 적 없는 어머니는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이제 담배 끊어야지” 당부했다.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껏 태워 날린 담뱃값을 모으면 국산 중형차 또는 대형차 한 대 값은 족히 될 것이다. 그 돈으로 초기에 비트코인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수많은 이유에도 여태껏 단 한 번도 금연에 도전하지 않은 건 내심 실패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금연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나는 흡연자일 뿐이지만, 금연에 도전해 실패하면 나는 나약한 흡연자가 된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고, 그런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금연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건 현존하고 급박한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난생 처음 스페인에 여행 갈 일이 생겼는데, 환승 시간을 합쳐 비행 시간이 스무 시간이 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금단의 고통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미리 예행연습이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 어느 주말, 디톡스 한다는 기분으로 밥과 담배를 끊었다. 처음에는 담배 생각이 절실했으나, 24시간쯤 지나자 배고픔이 흡연 욕구를 압도했다. 하루를 버티자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루만 더 해보자고 버텼더니 어느새 일주일이 됐다.

이 금연기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 스페인에서 첫 이삼일은 잘 버텼으나, 결국 담배에 다시 손을 대고 말았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스페인이 그토록 흡연자 친화적이라는 걸 모르고 방심한 탓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거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담배를 피웠고, 그 곁을 지나는 사람들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손사래 치지 않았다. 고민하고 망설인 끝에 어느 바닷가 방파제 위에서 담뱃불을 붙였다. 공기는 상쾌했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서울의 뒷골목에서 다른 흡연자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는 신세가 됐다. 한 해 세금 12조원을 내고도 한국에서 흡연자들은 불가촉천민 같은 대접을 받는다. 금연하지 못한 탓에 이런 취급 받는 것이 새삼 분하고 처량하게 느껴졌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2019년 성인 남성 흡연자 466명을 조사했더니, 흡연자 3명 중 1명은 금연에 도전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고, 금연에 도전한 사람 10명 중 6명은 금연에 실패했다. 그만큼 금연은 마음먹기도 어렵고, 실행은 더 어렵다. 그래도 서울시 흡연 인구가 10년 만에 3분의 1 줄어든 걸 보면 이 어려운 도전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나도 다시 도전할 것이다. 이미 한 번 실패했으니, 더 잃을 것도 없다.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금연이다. 나는 수백 번도 더 해봤다”고 하지 않았는가.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끝내 금연에 성공할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행운이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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