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194] 혼잡률과 혼잡도
할 일이 좀 많던가. 온몸으로 승객 밀어 넣어야지, 차체 두드리며 오라이 외쳐야지. 요금 받기야 말할 나위 있으랴. 정류장마다 “○○○ 내리실 분” 불러대고 내렸다 탔다…. 앉을 수도, 앉을 자리도 온종일 없었다. 버스 미어지면 기사가 갈지자 운전으로 사람들을 출입문 반대쪽으로 몰 때 간신히 문 닫아야 했고.
안내양과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대중교통 수난이 살벌하다. 숨 쉬기 힘들거나 아예 정신 잃은 승객이 속출한 김포도시철도 문제를 풀고자 우선 전세 버스를 동원했다는데. 어쩌다 이 지경 됐나 싶던 차에 물음표가 덧붙었다. 여기서는 ‘혼잡률(率)’ 저기서는 ‘혼잡도(度)’, 대체 뭐가 옳을까.
‘率’은 비율을 뜻하는 접미사. 대개 기준치 100으로 잡을 때 어느 수치에 해당하느냐를 말한다. ‘할인율’ ‘실업률’ 하듯 구체적이다. 따라서 승객이 수송 정원 대비 얼마나 되는지 셈한다면 率을 써야 옳다. 그러지 않고 막연히 사람이 많으니 적으니 한다면 어떤 정도를 가리키는 度가 어울린다. 음식이 신선한 정도를 말할 때 세세한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우므로 ‘신선도’라 하듯이. 공무원의 행실 또한 ‘몇 퍼센트 깨끗하다’식으로 말할 수 없으니 ‘청렴률’이 아니라 ‘청렴도’가 어울린다. 요컨대 기준을 일정한 수치로 잡느냐 상대적 정도로 잡느냐에 따라 ‘혼잡률, 혼잡도’가 갈릴 수 있다.
‘혼잡률’에서 새겨둬야 할 점이 신문 사진 속 문구에 있다. ‘혼잡율 대책 70번 정류장.’ 한자음 ‘렬, 률’을 ‘열, 율’로 적어야 할 때가 따로 있는 맞춤법 규정에 어긋난 것이다. ‘서열 나열 순열 핵분열’ ‘이율 규율 환율 출산율’로 쓰는 데 답이 있으니.
한 가지만 기억하면 ‘출산률’ ‘할인률’로 잘못 쓸 일 없다.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서만 ‘열, 율’로 쓴다는 점. 어두야 당연히 ‘열, 율’이고(‘렬강’→'열강’ ‘률동’→'율동’). 5월 1일은 근로자의날, 5일은 어린이날, 이런 거 안 까먹지 않는가. 우리말이 그보다 하찮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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