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귀향[이준식의 한시 한 수]〈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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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밖으로 내몰려 가족과 소식 끊기고, 겨울 나고 또다시 봄이 지나네.
고향 가까워지자 한결 두려워지는 심정, 그곳서 온 사람에게 차마 집 소식 묻지 못하네.
심지어 고향 사람을 만나고서도 '차마 집 소식을 묻지 못한다'.
낙양과는 꽤 먼 거리인 한수(漢水)를 지나면서도 '고향과 가까워진' 걸 느꼈다니 심리적으로 이미 귀향의 성공을 예감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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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까워지자 한결 두려워지는 심정, 그곳서 온 사람에게 차마 집 소식 묻지 못하네.
(嶺外音書斷, 經冬復歷春. 近鄉情更怯, 不敢問來人.)
―‘한수를 건너며(도한강·渡漢江)’·송지문(宋之問·약 656∼712)
오래 객지에 머물다 귀향길에 나선 나그네라면 가까워지는 고향을 떠올리는 일이 더없는 설렘이자 벅찬 감격일 것이다. 그 경쾌한 발걸음이며 달뜬 심경을 무엇에 비기랴. 한데 시인은 ‘고향 가까워지자 한결 두려워지는 심정’이 된다. 심지어 고향 사람을 만나고서도 ‘차마 집 소식을 묻지 못한다’. 왜 그랬을까.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궁금하지만 묻지 못하는 모순심리는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가족이 평안하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깨트리고 싶지 않기에 애써 궁금증을 억누르려 한 것이다. 이는 또 당시 시인의 처지와도 무관치 않다. 유배지 영남 땅 광둥(廣東) 지방에서 몰래 도망 나와 귀향길에 올랐기에 신분 노출이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무측천(武則天)의 측근으로 온갖 호사를 다 누리던 시인은 여황제가 축출되면서 황량한 오지로 좌천되었고 낙양 귀환이 아득해지자 탈출을 결행한 것이다. 시인의 은밀한 귀향이 환희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낙양과는 꽤 먼 거리인 한수(漢水)를 지나면서도 ‘고향과 가까워진’ 걸 느꼈다니 심리적으로 이미 귀향의 성공을 예감했는지 모른다.
송지문은 당대 율시의 초석을 다진 인물. 뭇 신하들과 시재를 겨루어 즉석에서 황제의 비단 두루마기를 하사받을 정도로 시재가 출중했다. 출세를 위해 여황제의 남총(男寵·성적으로 여황제의 총애를 받는 미남자)에게 아첨도 하고 스스로 남총이 되려다가 좌절되었다거나, 조카의 시구를 뺏으려다 실패하자 그 목숨을 앗았다는 일화가 오명으로 남아 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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