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세계화 이후 세계경제체제 변화

유일선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2023. 4.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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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로 균열, 우크라 사태로 재편 가속
美中 경쟁·협력 공존 속 韓 생존전략 찾아야할 때
유일선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신자유주의자들은 역사는 시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보한다고 믿는다. 시장은 참여자에게 교환이익을 주고, 경쟁을 통해 능력 있는 사람과 질 좋은 상품을 선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이 크고 많을수록 이익은 커지므로 경제적 번영으로 귀결된다. 기술혁신을 통한 상품개발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자유무역을 통해 무역장벽을 허물고 시장을 확대하면 분업의 원리가 작동되고 생산성이 높아져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시장은 주기적인 경기불황과 심각한 빈부격차로 사회적 불평등을,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유럽의 평균수명이 40세일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초래했다. 이때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들은 시장확보라는 명분 아래 무력을 동원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면서 인류가 공멸할 수 있는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치달았다. 부자들은 시장참여 기회가 많아 더 큰 이익을 누릴 수 있기에 빈부격차 확대는 구조적 성격을 갖는다. 시장을 제거하고 인간 스스로 ‘계획’을 세워 모두가 동등하게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사회주의라는 신사상이 등장했다.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소련과 중국 등이 일정 지역을 지배하자 전쟁처럼 체제경쟁이 치열했던 냉전시대로 이어졌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자들이 꿈꾸었던 전 지구의 시장화가 ‘기적처럼’ 세계화의 이름으로 다가왔다. 시장 없는 세상을 건설해 인간평등을 구현하려 했던 사회주의는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전체주의적 독재, 부정부패와 보편적 빈곤으로 허덕였다. 러시아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개방정책 이름으로 미국 주도의 세계시장경제 질서에 편입되면서 전 세계가 유례 없는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됐다. 디지털 기술혁명은 전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의 운영효율과 생산성 증대뿐만 아니라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었다. 이에 따라 분업은 국제적으로 확대돼 기획 설계 제조 유통 판매 등이 여러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글로벌 공급망이 구축돼 세계화가 가속화됐다. 이런 세계화 흐름은 선진국의 물가안정, 디지털 서비스 산업화와 ‘BRICS’로 대변되는 신흥국의 빠른 경제성장을 가져왔다. 미국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고 이런 세계화가 영원히 지속되리라 예견했다.

2008년 미국의 국제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로 세계화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세계화로 인한 구조적 사회 불평등 심화현상이 금융위기 과정에서 드러났다. 반면 국가 간 격차는 축소됐지만 미국은 신흥강국인 중국의 추격을 위협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영국 등 선진국 중산층은 자신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믿었다. 그들은 세계화의 이런 결과를 시장의 구조적 특성에서 찾기보다 중국 등 신흥강국이 자신들의 몫을 차지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의 불만은 정치 지형을 바꾸었다.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행하고 미국은 강력한 보호무역을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202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과 서구국가들은 시장을 연결고리로 하는 세계화 체제의 취약성을 인지했다. 자신들의 규칙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통제할 수 없는 상대방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도 깨달았다. 이런 인식은 세계경제질서에 국가안보 등 정치적 요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동인이 되었다.

이제 세계화 재편은 불가피하게 됐다. 미국은 국가안보와 자국산업보호를 이유로 4대 핵심산업(반도체 배터리 희귀광물 의약품) 등을 철저히 통제하고 첨단산업 분야의 기술이전과 해외투자를 최소화한다. 세계화 시대의 오프쇼어링을 철회하고 동맹국 중심의 ‘프렌드쇼어링’, 자국 부근에 공급망을 집중하는 ‘니어쇼어링’을 강화하며 시장을 분할해 투자하고 있다. 중국 또한 시진핑 체제를 확고히 하면서 미국과 경쟁을 피하지 않는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통해 대만 등 지정학적 문제에 대해 미국에 도전하고,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해외에서 미국과 자본투자 경쟁, 희토류 등 희귀광물을 포함한 무역과 기술 분야 경쟁도 치열하다. 이러한 세계화 재편으로 세계시장 곳곳에 무역장벽이 설치돼 글로벌 공급망이 축소되고 지정학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 요인에 의한 에너지전환 문제까지 겹치면서 총공급은 감소되고 인플레이션이 초래됐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으로 두면서 고금리 정책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고금리는 고용감소와 성장둔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시장원리에 따라 경제변수만을 고려해 경쟁하던 세계화 시대는 저물고 있다. 모든 요인이 변수가 된 상황에서 G2인 미국과 중국의 협력·경쟁·대결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세계경제가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화 재편이라는 변곡점에서 치열하게 생존전략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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