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우리는 제1부두를 맘대로 할 자격이 없다

강동진 경성대 교수 2023. 4.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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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경성대 교수

“부산항 제1부두는 1911년부터 부산항과 일본 본토를 오가는 여객 수송과 식민지 수탈 목적의 부두로 사용됨과 동시에 수많은 독립투사와 선각자가 출입하며 해방의 움을 틔웠던 곳이다. 해방기에는 고국으로 돌아오는 귀국 동포들의 유입로였고, 한국전쟁기에는 피란민과 군사·구호물자 수송의 중심 기능을 담당했다. 특히 유엔군 유입과 활동 지원을 위한 사령부로 쓰이며 전쟁 역전의 계기를 제공했고, 1950년대까지 유엔 원조와 국가 재건의 핵심 부두로 기능했다. 또한 수출화물선과 원양선이 최초 출항했던 국가무역사의 시점이기도 했다. 1960년대 들어 제1부두는 부산종합어시장으로 사용되는 등 무역과 여객 기능이 약화되었으나, 1970년대 들어 부산항 국제무역 활성화 정책에 따라 잔교를 증축하여 상부에 국제여객터미널을 건립하며 재전성기를 이루었다. 2000년대 들어, 부두시설 낙후 등의 이유로 제1부두는 북항재개발(1단계) 사업에 포함되어 도로 관통 후 매립되어 사라지도록 계획되었다. 그러나 시민의 간곡한 보존 요청과 이에 대한 관의 통 큰 수용으로 도로 노선은 변경되었고 매립계획 또한 취소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다양한 근대사를 품고 있는 제1부두는 역사공원으로 영원히 부산시민의 품에 남게 되었다.”

우리는 제1부두를 늘 이용하면서도 부두가 무엇을 베풀었는지 잘 모르며 살았다. 제1부두는 쉬지 않고 일했다. 대한민국과 부산, 그리고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언제나 늘 선조들의 걸음과 함께했다. 이곳에는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선조들의 열망과 피란시대의 안도감이, 그리고 대한민국을 구하려 유엔의 이름하에 모였던 세계인들의 호혜 정신이 응집되어 있다. 이 부두가 이제 110여 년의 임무를 마치고 쉼표를 찍으려 한다.

그런데 갑자기 제1부두가 공짜로 생긴 도심의 빈 땅인 양 부두 위에 체육시설과 도서관 같은 건축물을 짓자고 한다.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주장하지만, 제1부두를 건설부지로 사용하는 것이 앞선 자들의 희생과 헌신에 누(累)가 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백보 양보해서 지방자치시대이니 그럴 수 있겠다고 여기면서도 제1부두만큼은 빈 땅이나 개발을 위한 부지가 아니라 여러 층위의 근대역사가 점철된 역사의 현장으로 성찰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물러설 수가 없다.

부산시는 2016년부터 제1부두를 포함한 9개 유산을 ‘피란수도 부산유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왔다. 작년 12월에는 그렇게 기다리던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7년여 동안 부산시의 인내와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국가(문화재청)는 부족함을 알면서도 피란수도 부산유산을 잠정목록에 올려 주었다. 그런데 왜 스스로 일을 망치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피란수도 부산유산은 근대를 주제로 한 국가 최초의 잠정목록이지 않는가. 힘을 합치고 합쳐서 “부산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어!”라는 자존감 넘치는 주장을 당당히 펼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제1부두가 연결된 대청로에는 피란수도 부산유산 5개소와 국제시장, 부평깡통시장, 보수동책방골목 등이 연이어 있다. 올가을이면 대청로변에 부산근현대역사관도 개관된다. 부두 좌우편에는 북항재개발로 인한 수변공원과 휴양문화시설이 들어서는 중이다. 걸어서, 또 차와 배를 탄 방문객들이 넘쳐날 것이다. 아니 넘쳐날 수밖에 없다. 그 중심에 제1부두가 있다. 분명 제1부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매력적인 수변광장이자 역사공원이 될 것이다. 창의로운 시민 활동이 펼쳐지는 활력의 장이 되어 쉼 없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줄 것이다. 이미 우린 알고 있다. 뱃속에 든 몇 알의 황금알에만 주목하면 거위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부산에, 또 중구에 그리 땅이 없는가?” 세상이 크게 변하고 있다. 도시개발 관련 법도 급변하고 있다. 평지에 나열식으로 늘어놓는 개발 시대는 지났다. 빈 땅 채우기가 개발로 이해되던 때도 막 내린 지 오래다. 집중과 선택, 즉 부족한 땅을 아끼자는 ‘복합화’와 ‘입체화’에 눈을 떠야 한다. 이제 우리도 진정한 복합개발과 입체도시계획의 적용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런 일을 누가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겠는가? 바로 부산시와 중구의 행정가들과 의원들이다. 창의적인 기획만 있다면 체육시설과 도서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얼마든지 확보 가능한 시대다. 땅이 없어서 못 가진 것이 아니라, 관습에 젖은 후진적인 생각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생긴 결과다.


분명한 사실은 제1부두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제1부두는 앞으로 부산을 지키며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 후손들의 것이다. 제1부두가 가져올 무궁무진한 경제·문화적인 미래 가치를 그 어떤 것과도 바꾸어서는 안 된다. 무르익지 않은 생각으로 급하게 추진하지 말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제1부두가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져 가도록 하는 징검다리 역할 만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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