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41] 진짜 노예들의 막말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2023. 4.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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꿇어앉은 여인 뒤에 불길한 손이 다가선 글자가 있다. 한자 초기 꼴인 갑골문에 자주 나타나는 살풍경의 하나다. 그 손은 핍박과 억압의 의미다. 이 글자는 노예, 노비, 노복, 머슴, 종 등을 가리키는 ‘노(奴)’다.

추측건대, 우선은 전쟁 등에서 붙잡혀 온 여성 포로를 다루는 모습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남녀 성별(性別)을 넘어 광범위하게 ‘노예’를 일컫는 글자로 발전한다. 쓰임새는 당연히 고약하다. 신분상 심한 차별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왕조 시대 혹독한 계급사회를 이어온 동양에서는 참 민감한 글자이기도 하다. 공산당이 건국한 현대 중국은 국가(國歌) 첫 소절에서 이를 먼저 다룬다. “노예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여, 일어나서 함께 성벽을 쌓자”는 맥락으로 말이다.

/일러스트=이진영

성벽을 함께 쌓아 침략자를 물리치자는 호소다. 그럼에도 중국인이 쌓는 성 안에서는 늘 주종(主從) 관계가 사라지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통치 권력이 주(主), 그에 눌리는 성 안의 거주민이 종(從)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그 나름대로 구별도 있다. 신노(身奴)와 심노(心奴)다. 앞은 그저 처지가 노예인 경우다. 뒤는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종이나 머슴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만주족의 청(淸)나라 황제 앞에서 자신을 ‘종놈’이라는 뜻의 노재(奴才)라고 했던 중국인들이 실례(實例)다.

‘심노’이자 ‘노재’는 사실 통치 계급의 일원이다. 임금 등 지배 권력에 협력하면서 뭇 사람을 다스리는 이들이다. 예전 황제 밑의 벼슬아치, 요즘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공산당이나 방대한 관료 그룹이 그에 해당한다.

이들은 전제적 왕권이나 통치 권력의 수호에 매우 열성적이다. 주군과 체제 수호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요즘 세계를 상대로 막말을 해대는 중국 외교 라인의 관료들이 꼭 그 모습이다. 현대판 ‘심노’들의 언행에 높지 않던 중국의 국격(國格)이 또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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