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검찰 출신’ 윤석열 정부의 미제 사건 X파일

김진우 기자 2023. 4.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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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취재할 때다. 최대석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이화여대 교수)이 갑작스레 물러났다. 임명 엿새 만이었다. 인수위 측은 “일신상 이유”라고만 했다. 최 교수는 박씨의 대선 공약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기획자이자 통일부 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기자들이 서울 청담동 자택까지 찾아갔지만 얼마나 다급했는지 현관문을 잠그지도 못한 채 잠적했다. 이후 대북 접촉설, 국정원과의 알력설 등이 흘러나왔지만 전후 사정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김진우 정치에디터

‘최대석 미스터리’로 남은 이 사건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다 결국 강경으로 치달았던 박근혜 정권 대북정책의 행로를 예고한 것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파국을 맞은 국정 일탈의 전조이기도 했다. 사실 권력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알려지진 않는다. 국가안보 혹은 정권 이익을 위해 기밀로 유지되거나 은폐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출범 1년이 채 되지 않은 윤석열 정권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 정권 내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지난달 김일범 의전비서관, 이문희 외교비서관, 김성한 안보실장이 차례로 사퇴했다. 한·일 및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이 교체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대통령실은 “격무에 시달렸다”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내놓았다. 미국 측이 윤 대통령의 방미 기간 블랙핑크의 백악관 공연을 제안했는데 이들이 뭉개서 경질됐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자 대통령실은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공연은 방미 행사 일정에 없다”는 공지를 냈다.

“어이가 없네.” 영화 <베테랑>의 대사가 떠올랐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3주 전 인터넷에 유출된 미국 기밀문건에 155㎜ 포탄의 우크라이나 지원 방법을 고민하는 김 전 실장과 이 전 비서관의 대화 내용이 담긴 것이다. 문건에서 이 전 비서관은 윤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정부 원칙을 바꾸면 미국과 거래한 것으로 오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다. 때마침 한국이 155㎜ 포탄 50만발을 미국에 대여해 우크라이나에 간접 지원하기로 한 일이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뒀다. 묘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정황들을 안보라인 경질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지만 억측은 삼가자.

문제를 키운 건 정권의 대응이다. 미국의 한국 국가안보실 도청 의혹이 “터무니없는 거짓”이라더니 미국 현역 군인이 문건 유출 용의자로 체포되자 “알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하긴 “악의가 없다”며 미국을 두둔하던 대통령실이다. 대통령실은 되레 “(도청 의혹을) 정치권에서 정쟁으로, 언론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다루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며 야당과 언론 탓을 하더니 “국익과 국익이 부딪치는 문제라면 언론은 자국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까지 했다. “(언론이)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했던 게 당선자 시절 윤 대통령이다. 정권이 강조하는 ‘국익’이 실은 정권의 이익인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풍경, 낯설지 않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9월 윤 대통령의 미국 순방 중 비속어 파문 때 이를 보도한 언론을 “거짓으로 동맹을 이간하는 것이야말로 국익 자해 행위”라며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시켰다. 윤 대통령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한 선제적 양보안을 내놓고 비판이 고조되자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했다. 국가적 중대사를 독단적으로 결정해놓곤 비판 여론은 ‘정치적 의도’ ‘가짜뉴스’ 운운하며 틀어막기 급급하다. 국민적 공감대를 구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다. 23분 국무회의 발언 생중계로 상징되는 일방소통만 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4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한·일관계에 대한 자신의 결단을 강조하면서 비판적인 사람들은 결코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오만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진상 규명이 일인 검찰 출신 대통령에, 검찰 출신이 요직을 장악한 이 정권에서 정작 진상을 ‘쉬쉬’하는 미제 사건 파일들이 쌓여가는 건 아이러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은 최순실 국정농단 규명의 단초가 됐다. 때로는 미래를 앞서 보여주는 사건이 있는 법이다. 풍자만화 ‘윤석열차’가 그랬듯이 말이다.

김진우 정치에디터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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