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세상 상식과 여의도 상식

경기일보 2023. 4. 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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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원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의 미사일 발사처럼 처음 발사 때의 위기감도 계속되면 무덤덤해지듯이 보통 같은 일을 거듭해 겪게 되면 그 일이 아무리 엄중한 위험을 수반해도 어쩔 수 없이 위기감은 무뎌지는 게 마련인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온갖 것이 국민의 그러한 내성을 기르는 데 공헌(?)하는 듯이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요즘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산실이어야 할 보통 ‘여의도’로 통칭되는 의회가 종종 국민적 내성 강화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여의도는 원래의 목적이었던 화합과 타협의 산실에서 멀어져 오히려 갈등과 대립의 진원지로 탈바꿈한 느낌이다. 모름지기 정당정치란 각 당이 당리당략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국리국략을 추구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 당에 각각 고유의 당리당략이 있어야 하는 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러한 측면은 널리 권장될 필요가 있고, 수권을 목표로 한 각 당의 당리당략 경쟁이야말로 모든 국민의 바라는 바일 터다. 국민은 각 당의 당리당략 중 어느 것이 국리국략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나라 정당은 국리국략은 물론 변변한 당리당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정당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의 작금의 추세는 각 당의 치열한 ‘잘하기 경쟁’의 결과라기보다는 상대 정당의 실책에 따른 결과라는 특성이 강하다. 나의 득점이 아닌 남의 실점으로 내가 돋보이는 이상 현상이 꽤 오래전부터 일상화되고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반복되는 볼썽사나운 정당의 실태(失態)는 남 탓하기, 발뺌하기, 상대와 나의 원초적 차별 언행(내로남불) 등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질릴 정도로 내 과실의 원인은 남 탓으로 돌리고 내 책임은 발뺌하며 남의 작은 허물은 크게 보이는 눈도 내 큰 허물은 보이지 않는 듯한 내로남불의 언행이 횡행하는 사례가 축적된 결과, 국민은 웬만한 남 탓이나 발뺌에 너무 익숙해 있다. 남 탓 정치와 발뺌 정치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다. 남 탓 정치와 발뺌 정치에 국리국략을 다투는 정당 간의 정당한 당리당략 경쟁이 설 자리는 없다. 남 탓하고 발뺌하는 것이 여의도의 전매특허는 아니겠지만 일반인이라면 남 탓이나 발뺌도 한두 번이지 일상적으로 무한 반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의도에서는 일반인이라면 도무지 엄두도 내지 못할 남 탓과 발뺌에 내로남불의 언행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아마 세상 상식과 여의도 상식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의 상식이 여의도에서는 비상식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여의도의 상식은 세상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의도가 민의의 전당으로서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의도 상식을 세상 상식에 맞추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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