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기술주권 확보, 탄탄한 연구안보로 뒷받침해야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부원장 2023. 4. 2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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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

코로나19, 기후변화 등 글로벌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과학기술 국제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일부 국가나 단체를 중심으로 연구자산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증가하는 것도 현실이다. '열 사람이 한 도둑 못 막는다'는 속담처럼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는 상존하며 연구분야 또한 예외가 아니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외국 군인이 유학생 신분으로 위장해 국가기밀 연구에 접근하려다 적발되거나 외국 정부의 공격적 인재채용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연구자가 기밀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되는 사례 등이 이어진다.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 주요국들은 기술주권 확립을 위해 연구개방과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자국의 핵심 연구자산과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과 정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기존 통제와 관리 위주의 연구보안에서 진일보해 선제적 위험관리를 강조하는 자율적 연구안보의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연구자와 연구기관이 투명하고 진실한 연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연구자산 탈취위험으로부터 사전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반도체와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국립과학재단(NSF)에 연구안보국을 설치해 연구자산 보호정책을 수립하도록 했다. 연구기관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과 NSF 연구안보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외 이해상충, 기술첩보활동 등에 대한 정보를 보고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호주는 '외국영향투명성제도'의 기준에 따라 연구자들이 연구협력의 형태, 외국 영향력의 성격 등을 사전에 확인하고 공개함으로써 파트너십의 투명성을 입증하도록 했다. 일본 내각부는 '경쟁적 연구비 적정집행을 위한 관리지침'을 개정해 신규과제 신청시 국외 연구비 지원정보를 반드시 제출하도록 하고 연구자와 연구기관용 국제공동연구 자체점검 체크리스트를 마련해 배포했다.

반면 국내는 관련 제도가 아직 미흡하다. 주요국은 연구자가 다양한 국제활동을 할 때 자율적으로 위험요소와 수준을 미리 진단해볼 수 있지만 우리는 아직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이나 기준이 없다. 미국과 호주는 위험이 우려될 때 협력내용에 대한 상담이나 검토를 요청할 전담조직과 인력을 갖췄지만 우리 연구기관이나 부처, 연구관리 전문기관은 보안과제 관리를 위한 전문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과학기술의 국제화와 기술보호주의라는 양면이 공존하는 현재, 국가안보의 핵심이 되는 전략연구자산을 지키고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위법적인 국제교류로 피해를 보는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3단계의 촘촘한 사전 위험관리를 통한 국가 차원의 연구안보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우선 연구자는 소속 연구기관에 국제 연구활동 정보를 투명하게 보고하고 연구기관은 기관 차원의 보안대책을 수립해 연구자에게 조치사항을 알려야 한다. 다음으로 R&D 수행부처와 연구관리 전문기관은 연구기관의 보안대책 수립을 지원하고 기술유출에 대비해 대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전담조직과 인력을 바탕으로 일관된 연구안보 정책을 수립하고 연구자와 연구기관이 참고할 수 있는 '국제교류 사전점검 기준'을 마련해 연구자와 연구기관이 스스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12대 국가전략기술과 같이 국가 차원의 전략적 관리가 필요한 R&D 분야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사례 기반 국제연구협력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연구자산 유출사례의 유형과 대응조치, 위험요인과 방지대책 등을 안내해야 한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은 승패를 결정할 전략기술의 육성과 보호에 국가적 역량을 모으고 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 우리 기술주권을 확보하고 신뢰할 수 있는 협력의 파트너로서 스스로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민관이 힘을 모아 단단한 연구안보 체계를 확립해야 할 때다.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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