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한의말글못자리] ‘기획 작가’라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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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는 글이라면 문학적인 글을, 작가라면 예술가를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실용적인 글의 중요성을 잊고, 언어능력을 타고난 재능의 문제로 치며, 그것을 체계적으로 기르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가 전문하는 '언어 능력'이나 '국어 능력'은 사실 낯선 말인데, 한국 문화와 교육이 그들과 거리가 먼 까닭이다.
이는 사업에 필요한 바탕글을 지으면서 기획하고 알리는, 언어 소통 전문가이자 직업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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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과를 나와 소설을 쓰다 길을 바꾼 제자가 있다. 그는 아주 바쁘게 사는데, 근래에 수필집도 냈다. 중년이 된 그의 명함에 카피라이터라고 적혀 있어 하는 일을 물으니, 광고 문안(카피)은 일부에 불과하고, 사업 기획, 프레젠테이션, 브랜드 정체성 관리 등에 필요한 각종 글을 쓰며, 요즘은 콘텐츠 개발과 기업 보고 자료 구축에도 참여하는 프리랜서라고 했다.
짚이는 게 있어, 또래 중에 그런 일에 오래 종사해온 사람이 많으냐고 물었다. “저와 비슷한 일을 하던 이가 꽤 있었는데, 지금은 드물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방송계, 영화계의 구성 작가나 콘티 작가처럼 일과 보수가 일정치 않은 탓이겠지만, 일은 줄곧 늘어 가는데 말이죠.”
필자가 보기에, 제자는 언어능력이 뛰어나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들, 곧 일을 도모하는 이들의 뜻을 읽는 대화술, 그걸 정밀하게 드러내고 구성하는 표현력, 뉴미디어 시대에 부응한 정보 검색과 종합 솜씨 등이 모두 언어능력 관련 기능들이다.
그가 명함에 카피라이터라고 한 건 그런 분야를 가리키는 이름이 없어서이다. 그가 전문하는 ‘언어 능력’이나 ‘국어 능력’은 사실 낯선 말인데, 한국 문화와 교육이 그들과 거리가 먼 까닭이다. 우리나라에서 중등학교를 다닌 사람은 누구든지 ‘국어’ 하면 읽고 쓰는 활동보다 참고서에 가득한 조각 지식 외우기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지적 행위의 기본 능력 교육이 이렇게 그릇되니, 그와 연관된 말도 빈약한 셈이다.
필자는 여기서 ‘기획 작가’ 혹은 ‘바탕 작가’라는 명칭을 제안한다. 이는 사업에 필요한 바탕글을 지으면서 기획하고 알리는, 언어 소통 전문가이자 직업을 가리킨다. 명칭(개념)은 힘이 세다. 이 말이 자리 잡으면, 국어교육은 물론 대학 인문사회계 학과의 지도 목표가 일부 구체화하고 해당 과목도 생길 터이다. 사원채용 공고에 그게 등장하며, 거기 종사하는 이들의 노동조합이 생겨 권익을 보장받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최시한 작가·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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