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中·러 관계, 형·동생 역전이 가져올 거대한 충격파
스탈린, 마오쩌둥보다 장제스 상대 선호
1969년 우수리강서 국경 획정 놓고 전쟁
지난 400년간 러시아가 中에 우위 유지
우크라전 계기로 러 경제, 中에 의존 심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친 러시아가 중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중국이 러시아의 구세주가 되면서 양국 간 권력 관계는 역전되고 있다. 이제 중국이 '형', 러시아가 '동생'이다. 형과 동생의 '연대'는 미국에 충격파를 가할 것이다. 또 다른 글로벌 지각변동이다.
◇대립·적대·협력의 400년 관계
몽골의 200여년 통치에서 벗어난 러시아는 16세기 말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동진했다. 주요 교역품인 모피를 찾기 위해서였다. 담비, 족제비, 비버 등을 사냥하면서 끊임없이 동쪽으로 나아갔다.
17세기 전반 러시아는 헤이룽(黑龍)강(러시아명 아무르강) 유역까지 진출하면서 청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첫 조우였다. 당시 청나라는 '삼번(三藩)의 난' 등 여러 반란을 겪고 있어 이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청나라는 총포를 가진 러시아군에게 번번이 밀렸고, 결국 1654년 조선에게 조총수들을 요청했다. 효종은 두 차례에 걸쳐 병력을 파견해 청나라를 도왔다. 이른바 '나선정벌'(羅禪征伐) 이다. 나선은 '러시안'(Russian)을 한자음으로 표기한 단어다.
이후 청나라는 1689년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해 국경 분쟁을 매듭지었다. 헤이룽강 지류인 아르군강과 케르비치강, 와이싱안링(外興安嶺, 러시아명 스타노보이 산맥)을 국경선으로 정했다. 이에 따라 헤이룽강 유역과 연해주 지역은 청의 영토로 확정됐다. 이 조약은 중국이 서양 국가와 맺은 첫 번째 조약이었다.
그러나 청나라 국력이 쇠약해지자 러시아는 조약을 뒤집어버린다. 1860년 베이징(北京)조약을 맺어 연해주를 차지했다. 이로써 오늘날의 중러 국경선이 형성됐다.
이후 두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졌다. 중화민국이 선포됐으나 군벌 천지가 됐다. 러시아 제국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붕괴됐고 소련이 탄생했다.
소련 공산당과 코민테른은 중국 공산당을 지원했다. 의외로 장제스(蔣介石) 정권을 적대시하지도 않았다. 스탈린은 소련식 볼셰비키 혁명을 중국에 이식하려 했지만 마오쩌둥(毛澤東)은 저항했다.
스탈린은 이런 마오쩌둥보다 장제스를 선호했다. 1945년 8월 소련군은 만주로 진격해 만주국을 붕괴시켰다. 스탈린은 만주를 공산당이 아닌 국민당 정권에 인계했다. 이어 국공 내전이 발발했고 승리의 추가 국민당에 기우는가 싶더니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중국 공산당이 승리한 것이다.
1949년 10월 신중국 건국이 선포됐다. 집권한 마오쩌둥은 소련을 모범으로 삼아 중국을 현대 산업국가로 변모시키려 했다. 소련은 중국의 공업화를 지원했다. 양국 관계는 급격히 좋아졌다.
하지만 잠시였다. 1956년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이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이자 중국은 수정주의라고 맹비난했다. 소련은 중국을 교조주의라고 맞받아쳤다. 갈등이 본격화됐다. 급기야 1969년 우수리강의 경계 획정을 놓고 국지전이 일어났다. 전면전으로 확대되지는 않았으나 핵전쟁의 공포가 커졌다. 소련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중국은 미국과 손을 잡았다.
양국 갈등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나서야 봉합되기 시작했다. 2001년 7월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2005년 6월 '중러 국경에 관한 보충협정' 비준서를 교환하면서 약 4300㎞에 이르는 국경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21세기 들어 양국은 본격적으로 유대를 강화했다. 본격적인 밀월 관계에 돌입한 시기는 러시아에서 푸틴 집권 3기가 시작되고 중국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취임할 때쯤이었다.
◇무너진 '차르', 강해진 '황제'
이렇게 400년 넘게 이어져온 중러 관계를 보면 러시아가 대체적으로 우위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위계적 관계는 뒤바꿔지고 있다. 지난 3월 20~22일 시진핑 주석의 러시아 국빈 방문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지지부진한 전황, 서방의 강력한 제재, 나토의 동진 등으로 코너에 몰려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을 만나 손을 내밀었다. 두 정상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고, 14개 경제협력 협정도 체결했다. 중국측에 기울어진 협정이었다.
미국은 러시아가 중국과 한층 밀착하는 모습에 경계심을 바짝 보이고 있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최근 텍사스주 라이스대학 행사에 참석해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어떤 점에서는 서서히 중국의 경제적 식민지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러시아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적잖은 서방 기업들이 빠져나간 러시아 시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진출해 공백을 메우고 있다. 지난 1~ 2월 중국산 자동차의 러시아 시장 점유율은 37%에 달했다. 전년 같은 기간 9%보다 4배가량 급증한 규모다.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중국 샤오미가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점유율 1·2위였던 삼성전자와 애플을 전쟁 이후 가뿐하게 밀어낸 것이다. 그야말로 무혈입성이다.
석유 등 에너지와 원자재 수출에서도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은 높아만 간다. 위안화 역시 입지를 급속하게 넓히고 있다. 지난 2월 모스크바 외환거래소에서 위안화 거래량은 달러화를 처음으로 제치고 월간 외화 거래량 1위에 올랐다. 이 기간 위안화는 모스크바 거래소 전체 거래량의 40%에 달했다.
동시에 드러나는 것은 양국의 압도적인 국력 격차다. 국내총생산(GDP) 측면에서 중국은 러시아의 약 10배다. 극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군사력은 중국에 훨씬 뒤떨어져 있다.
◇한국, 격변의 파고 넘을 수 있을까
경제 규모가 미국과 거의 비슷한 중국의 존재는 러시아에겐 생명선이 되었다. 서방의 경제 제재에 포위당한 러시아는 앞으로 대중 의존도를 한층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양국 관계가 반미의 기치 하에 단단해졌지만 동시에 불평등한 성격도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국제 질서의 변화는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이 주도하고 운영해 온 국제 질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단결과 반미 기조에 의해 흔들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는 중국이 러시아를 이끌면서 미국과 대결하는 새로운 냉전을 예측하게 만든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리스크만 커진다. 그러나 한국은 한·미·일 삼각관계에 갇혀있는 듯 하다. 특히 중국의 막대한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격변의 파고를 넘지 못해 바닥모를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한국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서는 안된다.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는 실리적·포용적 외교 대응이 절실해졌다. 지금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외교 전략의 진화다. 논설위원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0대 남녀 몰래 캠핑하다가…제주 `서건도` 불태웠다
- 모텔 끌고가 옷 벗겼는데도 무죄…이유는 "성폭행 고의 없었다"
- 아내와 일본 여행 온 中 소방관, 日 20대 여성 심야 성폭행
- 초등교 운동장서 40대 흉기에 피살…용의자도 숨진 채 발견
- 노홍철도 당할 뻔…"주가조작 세력 수차례 투자유혹 모두 거절"
- 韓 "여야의정 제안 뒤집고 가상자산 뜬금 과세… 민주당 관성적 반대냐"
- [트럼프 2기 시동] 트럼프, 김정은과 협상할까… "트럼프 일방적 양보 안 할 것"
- 내년 세계성장률 3.2→3.0%… `트럼피즘` 美 0.4%p 상승
- `범현대 3세` 정기선 수석부회장, HD현대 방향성 주도한다
- "AI전환과 글로벌경쟁 가속… 힘 합쳐 도약 이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