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 공황장애, 약물로 치료 효과
대학생 이모(22)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등굣길에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이 평소보다 조금 많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못 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5분 정도 지나자 점차 몸이 불편한 느낌이 들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해지더니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호흡하려고 숨을 깊게 들이쉬려고 할수록 숨은 더 막히는 것 같았다. 점점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호흡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결국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내린 그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며 모였지만, 소리는 웅성웅성 희미하게 들리고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걸을 수 있을 정도는 됐다. 그러나 지하철을 다시 탈 생각을 하니 겁이 나서 그는 대중교통을 포기하고 지하철역 밖으로 나왔다.
지난 2021년 상반에 10대 여성 중 공황장애 환자는 지난 5년간 3배로 증가할 만큼 최근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유소영 서울시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공황장애 진단과 원인, 치료와 대처법을 들어봤다.
◇공황장애란?
‘공황(Panic)’이라는 단어는 그리스 신 ‘판(Pan)’에서 유래됐다. 판은 평소에는 조용한 플루트 연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다가 갑자기 괴성을 질러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렸다고 한다.
이 단어 유래에서 나타나듯이 공황장애는 갑자기 극도의 불안감이 여러 신체 증상과 동반해 나타나는 질환이다. 최근에는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로 과거에 힘들었던 경험, 이로 인해 활동을 중단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이 병이 무엇인지 전보다 널리 알려지게 됐다.
공황발작이란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감 △가슴 답답함 △심장이 터질 듯한 두근거림 △식은땀 △어지러운 증세 △손발이 마비되는 느낌 △곧 쓰러질 것 같은 느낌 등 여러 가지 신체 증상과 불안이 동반되는 것을 말한다.
공황발작을 처음 겪는 경우뿐만 아니라 발작을 여러 차례 겪은 사람들도 이러한 증상을 겪게 되면 죽을 것 같은 불안감에 119에 신고하거나 응급실을 찾아가고는 한다.
응급실 혹은 내과 등 병원에서는 심장ㆍ호흡기ㆍ뇌 질환 등 여러 원인에 대해 검사하게 되는데, 대부분 검사에서 문제 없다는 설명을 들을 때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처방된 약을 잘 복용하고 증상이 가라앉았다면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보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안도감을 느끼기보다 ‘내가 이러다 미치는 것은 아닌가’ 등 걱정이 찾아오기 일쑤다.
일상생활을 힘들게 하는 건 공황발작 외에도 공황발작이 또 언제, 갑자기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이러한 불안감으로 인해 공황발작을 겪었던 장소나 상황은 피하게 되고 그러한 장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지하철ㆍ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을 주저하거나, 쇼핑몰ㆍ영화관 등 사람이 많거나 바로 빠져 나오기 어려운 장소는 가지 않게 된다. 예기불안과 광장공포증이 일상생활을 제한되게 만드는 것이다.
공황발작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유받고도 선뜻 내키지 않아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이 이러한 예기불안과 광장공포증의 지속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게 되면서 결국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공황발작은 1년 간 미국 성인 11%가 경험할 정도로 흔한 증상이고, 평균적으로 22~23세에 증상을 처음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2018년 공황장애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2014년에 비해 70.5%가 증가했고, 20대에게서 공황장애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
◇어디서 진단을?
그러면 한 번 공황발작을 경험으로 바로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 받아야만 하는 걸까. 다행히 한 번 공황발작을 겪은 사람들이 모두 ‘공황장애’ 진단을 받는 건 아니다.
공황장애는 ‘반복적’으로 ‘갑자기’ 공황 발작이 있을 때 내려지는 진단으로 한 번 이상의 공황 발작을 경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더불어 공황발작 외에 예기불안 등으로 공황발작과 관련돼 일상생활에서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행동이 바뀌게 되면 공황장애 진단을 내린다.
그러면 공황발작이 왔을 때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하는 건 소위 ‘과잉 진료’일까. 그렇지 않다. 공황발작은 △갑상선항진증 △부갑상선기능항진증 △심장 질환 △전정기관 부전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COPD) 등 다양한 원인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공황발작이 나타나면 원인 검사를 시행해 신체적인 이상이 없는지는 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심장 질환으로 인한 증상이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심전도 검사는 응급실 내원 시 시행하게 된다.
공황발작은 겪는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질문이 있다. ‘이러다 미치는 건 아닌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다. 그리고 공황 장애가 다른 정신 질환인 우울증과 조울증 등으로 진행되는 건 아니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공황장애가 지속되면서 우울증이 동반될 때가 자주 있다. 따라서 공황장애가 오래 지속되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게 좋다.
◇스트레스가 가장 큰 문제
공황장애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다. 연예인들도 힘들었던 공황 증상의 경험이 감당하기 힘든 바쁜 일정이나 주변 부담감 등과 같은 여러 스트레스 상황에서 시작됐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울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우울증이 있다고 호소하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공황장애 또한 불안 요소가 없는데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중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 신체적 피로도가 높은 상태 등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날 수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순 없다.
이전에는 과거 경험과 충격에서 공황발작 원인을 찾고, 심리 치료로 공황장애를 치료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뇌 기능 원인이 있고, 이에 대한 약물 치료가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뇌의 기능에 이상이 생겼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일상생활 유지가 치료 목표
공황발작에 관여하는 뇌 메커니즘이 알려지면서 공황장애 치료도 심리 치료, 인지행동 치료 등 비약물적 치료 외에 약물 치료도 가능하게 됐다.
약물 치료로는 항불안제와 항우울제가 사용된다. 비약물적 치료도 상당히 효과가 있는데 특히 예기불안에 대처하고, 공황발작이 생겼을 때 초기에 대응하기에는 호흡법과 인지 치료가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증상이 자주 있거나, 불안으로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 약물 치료를 하는 게 권장된다.
공황장애 환자는 카페인ㆍ술 등 공황발작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음식의 과다 섭취는 피하는 게 좋다.
또 복식 호흡과 근이완법을 평소에 익혀서 공황발작이 왔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후자의 위치라면 환자의 공황발작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완화된다는 점을 공유하면서 과호흡하지 않도록 도와 줘야 한다.
공황장애는 힘겹고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병이다. 하지만 완치가 불가한 병은 아니다. 예기불안과 맞서는 힘을 길러 나가면서 일상생활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유소영 교수는 “공황장애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지만 완치가 불가능한 병은 아니다”며 “예기 불안에 맞서는 힘을 기르고 일상생활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공황장애라는 긴 터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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