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준강간 미수 사건’ 무죄…“가해자 중심적 사고”
법조계 “법원 인식 보여준 것”…국민참여재판 폐단 지적도
만취 상태의 여성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법원이 ‘가해자 중심주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 성폭력 사건은 일반인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온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7일 준강간 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7년 5월 서울 홍대의 한 클럽에서 피해자 B씨를 처음 만나 술을 함께 마신 뒤 만취한 B씨를 경기도 소재의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았다. 당초 검찰은 범죄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A씨를 불기소했지만, 피해자의 항고와 재정신청을 거친 끝에 A씨를 준강간 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선 배심원 7명 중 5명이 무죄 평결을 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준강간을 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심 재판부와 대법원도 “준강간의 고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판단을 누락한 잘못이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A씨가 B씨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성폭행하려는 고의’가 있었는지였다.
원심은 A씨가 일행과 함께 B씨를 부축해 모텔로 들어갔으므로 B씨가 만취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A씨가 모텔방에서 B씨의 옷을 전부 벗긴 사실도 인정했다. 하지만 B씨가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A씨가 “만약 성교하면 시체와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며 결국 성폭행하지 않은 점을 인정해 B씨를 준강간하려는 고의가 없었다고 봤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법원이 가해자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성범죄 전문인 이은의 변호사는 “누군가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상태라면 사전에 동의를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의사가 계속 유지될 거라 확인할 수 없지 않냐”면서 “‘그 사람을 대상으로 이런 걸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법원이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라고 했다.
성폭력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재차 제기됐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8~2020년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는 다른 범죄보다 높은 무죄율(21.88%)을 보였다. 강도나 상해보다 3배나 높았다.
이 변호사는 “성범죄 피고인은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에게 본인의 처지를 호소하고 피해자를 탓하면서 배심원들의 동정심에 호소하곤 하는데, 문제는 이게 통한다는 것”이라며 “성폭력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열기엔 부적합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심에서 나온 국민참여재판 결과를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 모순점을 드러낸 사건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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