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구제에 ‘6대 조건’…“피해자 걸러내나” 반발
사기 의도 등 6개 요건 모두 충족해야 구제
정부가 27일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안’의 적용 대상이 되려면 ‘수사 개시’, ‘서민 임차주택’,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 등 6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매로 넘어간 집을 제3자가 낙찰받더라도 피해 임차인이 우선 매수할 권리를 갖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피해 임차주택을 매입하는 특별법상 지원을 받기 위한 ‘피해자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조건이 엄격하다고 반발했다. 입법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재 경매에 들어갔거나, 이미 경매가 끝났거나, 보증금을 포기하고 퇴거해 생계 위기인 임차인들을 위한 지원과 주거 안정을 챙기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며 특별법의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최근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기존 대책의 한계가 드러나자, 앞선 네차례 전세사기 관련 대책에 이은 다섯번째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부·여당의 특별법안이 시행되면, 피해 임차인은 선순위 저당권자가 신청한 경매를 유예 또는 정지시켜달라는 신청을 법원에 할 수 있다. 또 피해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최고 낙찰가로 집을 매수함으로써, 제3자 낙찰로 인한 강제 퇴거를 피할 수 있다. 임대인의 체납 세금은 피해 임차주택들에 안분돼, 경매 개시도 원활해진다. 아울러 경매 낙찰 여력이 없는 피해자는 엘에이치 등에 우선매수권을 넘겨 임차주택 매입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엘에이치는 낙찰가격과 피해주택 상태 등을 따져본 뒤 경매에서 집을 낙찰받아 피해자에게 최장 20년간 시세의 30∼50% 임대료로 공공임대주택(매입임대)을 공급한다. 특별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공포되면 즉시 시행되고, 시행 뒤 2년 동안만 유효하다.
정부는 특별법 제정 추진과 별개로 경매에 나선 피해자들을 위한 대출, 세금 지원안도 내놨다. 연소득 7천만원 이하의 피해자는 주택도시기금이 제공하는 디딤돌 대출을 통해 경매 낙찰대금을 3년 거치로 최장 30년간 저리(연 1.85∼2.70%)로 빌릴 수 있다. 또 연소득이 7천만원을 넘는 피해자는 6억원 이하 주택에 한해 연 3.65∼3.95% 금리로 최대 5억원까지 빌릴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상품의 만기는 최장 50년, 거치 기간은 최대 3년이다.
피해자의 경매 낙찰대금용 대출에는 1년간 한시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100%가 적용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또 낙찰받은 집에 대한 취득세는 200만원 한도 안에서 면제되고, 재산세는 3년 동안 25∼50% 감면된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대책위)는 지원 대상 6가지 요건이 너무 엄격해 지원 범위가 좁다고 반발한다. 해당 요건은 △대항력·확정일자가 있는 임차인 △경매·공매를 진행 중인 경우(또는 집행 권원을 확보한 경우) △면적·보증금 등이 서민 임차주택에 해당하는 경우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보증금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이다. 세부 기준은 다음달 중 마련될 시행령에 담기며, 요건 충족 여부는 국토부에 설치될 민관 합동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심사한다.
대책위는 이날 입장문을 내어 “(정부가 내세운)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피해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 피해자를 걸러내기 위한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원희룡 장관은 요건 중 하나인 서민 임차주택 기준에 대해 “억울하게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피해지원위가 탄력적인 판단을 하도록 하겠다”며 “대신 큰 예외 사항이 없으면 전용면적 85㎡, 시세 3억원 기준을 지키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피해 임차인의 ‘보증금 채권’을 매입하는 이른바 ‘선 보상 후 구상’ 방안이 임차인 보증금 회수 지원책으로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요구도 이어질 전망이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28일 열린다.
최하얀 최종훈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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