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탄압 미얀마 떠난 ‘난민 소년’ 대학생 됐다
“수십만명 중 선택받은 행운아” 군부의 탄압을 피해 고국 미얀마를 떠나 온 리안 티안 눈(20)이 자신을 지칭하며 한 말이다. 살기 위해 미얀마 국경의 정글을 헤치고, 어머니 어깨 위에 걸터앉아 가슴팍까지 오는 수심의 강을 건너며, 5년 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까지 걸린 10년을 압축하는 말이다.
그는 한국에 들어온 뒤로 ‘대학 입학’이란 새로운 꿈을 꿨다. 어려운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친구들을 지켜보면서 흔들렸고, 너무나도 비싼 대학 등록금에 절망했지만, “난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더 이를 악물었다. 같은 난민 친구조차 “무모하다”고 했던 그의 도전은 올해 경희대학교 소프트웨어학과에 입학하면서 결실을 이뤘다. 이 학교에 미얀마 난민이 입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8일 경희대 국제캠퍼스 기숙사에서 만난 리안은 검정색 야구 모자와 투명색 하금테 안경을 쓴 영락없는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이제 한달차 새내기이지만 수업 시작 한시간 전에 강의실에 도착해 맨 앞줄 자리를 맡을 정도로 학구열도 뜨겁다. ‘인싸’ 기질도 다분하다. 단과대학 축구동아리에 들어가 수비수로 활약하며 주전선수로서 몫을 톡톡히 한다. 일정 착오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지 못해 아직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 못했다며 “중간고사 후 엠티”도 벼르고 있다.
리안은 미얀마 서북부에 있는 친주에서 왔다. 미얀마 소수민족인 친족이었던 아버지가 독립 투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군부의 ‘표적’이 됐고 집과 땅을 빼앗기며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군인에게 잡히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죽인다는 얘기도 있었다”며 “살기 위해서 미얀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리안의 가족들은 군부의 총칼을 피해 피신한 말레이시아에서 3년간 불법체류자로 살았고, 2013년에 난민 협약에 따라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
리안 가족들의 한국행은 유엔난민기구(UNHCR)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말레이시아를 떠나 새로운 나라로 이주할 수 있다”던 전화 한통이 그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미국이나, 뉴질랜드 같은 선택지도 있었지만 “한국에 가면 고등학교까지 무료이고, 대학도 갈 수 있다”는 유엔 관계자의 말에 한국행을 결정했다. “나이가 더 많아지기 전에 학교에 가는 것”이 리안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민이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학비’였다. 김포의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방학 때마다 틈틈이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보태야 했던 집안 사정상 대학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처지가 비슷한 주변 난민 친구들도 대부분 졸업 후 취직에 나섰다. 그럼에도 “돈 벌고 대학가도 된다”는 친구의 말을 뿌리치고 대학에 지원한 건 학업을 포기하는 난민 학생들에게 ‘가능성’을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학 합격증을 손에 쥐었지만, 끝까지 돈이 발목을 잡았다. 학비는 학교 쪽이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입학 시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은행잔고증명서가 문제가 됐다. 학비 조달을 입증할 수 있는 ‘3천만원이 입금된 통장’을 만들기 위해 대출까지 받았지만, 천만원이 모자랐다. 입학 등록이 마감되기 불과 몇시간 전, 지인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천만원을 빌려 수 킬로미터 떨어진 은행까지 뛰어가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빅데이터 전문가와 게임 개발자가 꿈인 그는 “공부를 하고 싶어해도 어려운 가족들을 돕기 위해 일부터 하는 난민들에게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 성공해서 저와 같은 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은 미얀마 말로 ‘멋진 사람’이란 뜻이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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