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화려한 의전 속 도감청·반도체는 묻힌 국빈 방미
한·미 정상회담은 한국 기업 우려는 해소하지 못하고, 중국을 겨냥한 미국 경제안보 체제에 한발 더 편입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채택한 공동성명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에 대해 “양국이 기울여온 최근의 노력을 평가”하면서 “앞으로도 긴밀한 협의를 이어가기로 약속”하는 데 그쳤다. 또 반도체 공급망은 “국가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양국의 해외투자 심사·수출통제 당국 간 협력 심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봉쇄 체제에 한국 정부가 편입될 수 있고,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활동에 족쇄가 될 우려가 커졌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 속에서 이뤄진 이번 정상회담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미국의 이해와 양보를 얻어낼 기회였다. 하지만 미국은 원칙을 유지했고, 한국의 우려는 해소되지 않았다.
정상회담에서 양자·바이오·배터리·디지털 및 우주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한 기회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모처럼의 정상회담에서조차 한국 기업들의 ‘발등의 불’을 끄지 못한다면 이익균형을 맞췄다고 볼 수 없다.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해 이뤄진 국빈방문에서 미국은 화려한 환영행사로 한국 정상을 맞이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 정보당국의 도청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항의는커녕 미국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표명했다. 미국 방문에 앞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초래할 문제 발언들을 쏟아내며 미국 편을 들어줬지만, 그 대가로 얻은 게 무엇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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