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클럽 준강간
2017년 5월5일 A씨는 서울 홍익대 근처 클럽에서 처음 만난 B씨와 술을 마셨다. 이후 정신을 잃었다가 경기도의 모텔에서 나체 상태인 자신을 발견했다. 몸에는 성폭행 피해 흔적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수사기관에 신고했지만 검찰은 범죄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해 11월 B씨의 강간, 준강간, 유사강간, 간음유인 등 혐의에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시민단체 163곳이 참여하는 공동대책위가 ‘가장 보통의 준강간’이라고 명명한 사건의 시작이다.
준강간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인 사람을 간음하는 성범죄다. 강간죄와 같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준강간 사건은 당사자가 술에 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자는 술에 취해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가해자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그런데 피해자는 심신상실 상태이므로 범행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진술하면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로 보기 어려워 범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오히려 무고로 엮일 수 있다. 클럽·헌팅포차 같은 곳에서 술을 마신 뒤 피해를 당했다면 사회의 시선 때문에 신고하는 일부터 난관이다.
우여곡절 끝에 A씨의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졌고, 서울고법은 2019년 B씨의 혐의에 기소명령을 내렸다. B씨가 모텔에서 A씨 옷을 벗긴 사실을 인정하고 “성교하면 시체와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고 진술한 이상 ‘준강간미수’ 혐의가 있다고 봤다.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A씨를 B씨 일행이 모텔로 옮기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TV 자료도 나왔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선 배심원 과반이 ‘B씨에게 죄가 없다’는 평결을 내려 무죄가 선고됐고,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27일 대법원은 이런 판단에 오류가 없다고 보고 B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 결과겠지만, 일반인의 법상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심신상실 상태였음을 피해자가 증명해야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준강간 범죄에 입법 보완도 필요하다. ‘항거불능’ 개념을 ‘항거곤란’으로 확장하고, ‘동의’ 요건을 둬 강간죄를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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