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일화학서 일한 일가 6명…석면질환으로 4명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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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6명이 제일화학에 다녔는데 모두 죽고 2명만 살아 있습니다."
손 씨는 "제일화학 노동자는 매년 건강검진을 실시해 증상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지만, 부산지역 석면공장이나 조선소 일대에 살았던 주민은 시가 검진을 해주지 않으면 원인도 모른 채 석면 질환으로 사망할 수 있다"며 "상시 검진 체계가 꼭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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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면폐증 3급 앓는 박영구 씨
- “당시 석면원료 포대 덮고 쪽잠
- 머리에 하얗게 가루 뒤집어써”
- 같이 일하던 아내 38살에 숨져
- 실 제조 공정 노동자 손귀남 씨
- “공장서 야식으로 먹었던 라면
- 석면 가루 밤마다 퍼먹었던 셈
- 속눈썹 위로도 먼지가 쌓였다”
“가족 6명이 제일화학에 다녔는데 모두 죽고 2명만 살아 있습니다.”
지난 26일 부산 연제구 연산동 연신초등학교 인근에서 만난 제일화학 노동자 박영구(69) 씨와 손귀남(여·69) 씨는 옛 제일화학 터를 둘러보며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형수와 시동생 관계로, 박 씨 부부와 손 씨 부부를 포함한 일가족 6명이 제일화학에 다녔다. 현재 4명이 석면 질환으로 숨지고 2명만 살아남았다.
박 씨는 1971부터 1978년까지 7년간 제일화학에서 석면 실을 뽑고, 기계 정비 업무를 맡았다. 공장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는 자녀 두 명을 낳은 뒤 갑자기 기침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고, 산소통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숨쉬기 힘들어했다. 석면의 위험성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이전이라 병원에서도 정확한 진단이 어려웠고, 결국 38세에 숨졌다.
박 씨는 2007년 석면폐증 7급을 진단받았으나 최근 3급으로 증상이 악화됐다. 석면폐증은 호흡기를 통해 폐로 들어간 석면 먼지가 조직에 들러붙어 폐가 굳는 증상이다. 박 씨는 “2교대 근무 당시 석면 원료를 담았던 포대를 덮고 쪽잠을 자기도 했는데 일어나면 머리가 새하얗게 샌 것처럼 석면 가루를 뒤집어썼다”며 “요즘은 매일 아침 가래 덩어리를 뱉어내야 숨을 쉴 수 있고, 폐 기능 저하로 오르막길이 아닌 평지를 걸어도 쉽게 숨이 찬다”고 하소연했다.
손 씨는 1973년부터 1976년까지 청석면 실 제조 공정에서 일했다. 청석면은 백석면보다 더 독하고 분진 가루가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손 씨는 “공장 내부는 석면 먼지가 안개 낀 것처럼 자욱해 속눈썹 위까지 먼지가 쌓이곤 했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면 석면 먼지가 반짝거리며 빛났던 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손 씨는 공장에서 끓여주던 ‘석면 라면’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새벽 1시가 되면 공장 정문 앞에서 대형 솥을 걸어놓고 라면을 가득 끓여 야식으로 줬다. 끓인 라면을 ‘스댕(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아 석면 먼지가 굴러다니는 바닥에 줄지어 놓으면 당시 10대였던 여공들이 가져다 먹었다. 손 씨는 “당시엔 정말 맛있었는데, 사실 석면 가루를 밤마다 먹으면서 일한 것”이라며 몸서리쳤다.
석면의 위험성이 밝혀지기 이전에는 석면 질환을 다른 질병으로 오진하는 사례도 흔했다. 1999년부터 식당을 운영했던 손 씨는 보건소에서 요식업 종사자 ‘보건증’을 받기 위해 결핵 검사를 받으니, 결핵 진단이 나와 6개월 동안 결핵약을 먹기도 했다. 기침을 달고 살았지만 동네 병원에 가면 감기약만 처방해줄 뿐이었다. 손 씨는 과거 석면폐증 7급을 진단받았으나 지난해 코로나19 확진 이후 증상이 심해졌다.
손 씨 가족도 석면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함께 공장에서 일했던 남편은 지난해 악성 종피증을 진단받은 지 1년 만에 숨졌다. 같은 공장에 다닌 사촌 2명 역시 석면 피해 질환으로 사망했다.
두 사람은 27일 국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부산시가 올해 석면 피해 의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영향조사 예산을 삭감한 데에 우려를 나타냈다. 손 씨는 “제일화학 노동자는 매년 건강검진을 실시해 증상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지만, 부산지역 석면공장이나 조선소 일대에 살았던 주민은 시가 검진을 해주지 않으면 원인도 모른 채 석면 질환으로 사망할 수 있다”며 “상시 검진 체계가 꼭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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