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하청업체를 노예로 만든 대우조선해양의 '영업 비밀'
공적 자금 12조 원이 들어간 대우조선해양이 재벌기업 한화에 단돈 2조 원에 팔리게 됐다. 20여 년 만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품을 떠나 새 주인을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방만 경영, 부실 경영의 희생양이 된 노동자들, 특히 하청노동자들이 받아 온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10년간 폐업한 120개가 넘는 하청업체, 30% 이상 삭감된 하청 노동자 임금과 관련된 문제다. 뉴스타파는 2018년 시작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자료,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이 관련된 각종 판결문을 입수해 대우조선해양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세계 1위 조선기업의 어둡고 참혹한 현실이다. <편집자 주>
ⓛ “우리는 노예였다”...신용불량자가 된 대우조선 협력사 대표들
누군가는 자신의 일터가 ‘굴레’였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지옥’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노예’와 다름 없었다고 털어놨다. 한 때는 '사장님'으로 불렸던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 사내 협력사 전직 대표들의 이야기다.
뉴스타파는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대우조선의 불법 하도급을 신고한 23명 하청업체 대표들의 탄원서를 입수했다. 탄원서에는 대우조선이 어떤 방식으로 하청업체를 부려 왔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도급 대금을 깎아 왔는지, 대우조선이 경영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들을 어떻게 쥐어 짰는지 담겨 있다.
23명의 대표들은 조선업 불황과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사건이 겹쳤던 2013~2016년 대우조선 사내 협력사를 운영했던 사람들이다. 대부분 대우조선이 흑자로 공시됐던 시기 협력사에 지원했다가, 5조 원대 분식회계의 희생양이 되어 대우조선을 떠났다. 이들이 대우조선에서 받지 못한 하도급 대금은 14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18년 공정위는 하청업체 대표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대우조선이 계약서도 없이 일을 시켰고, 일방적으로 하도급 대금을 낮게 지급했다"며 10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리고 불법하도급을 시정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피해 업체들은 아직까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대우조선이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빚을 갚지 못한 업체 대표들은 대부분 신용불량자가 됐다.
대우조선의 불법 하도급 피해는 탄원서를 낸 전직 하청업체 대표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뉴스타파 조사 결과, 지난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대우조선에서 폐업한 하청업체는 총 206개, 해마다 20개 이상이 사라졌다. 조선업 불황기였던 2016년에는 무려 40곳이 폐업했는데, 그 중 80%(32개)가 경영악화로 도산했다. 이들 업체가 4대 보험, 퇴직금 체납 등으로 누적한 부채가 335억 원, 체불 임금도 125억 원에 달했다.
바꿔 말하면, 대우조선 사내 하청업체에 속한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임금과 4대 보험금을 떼였다는 이야기다. 현재도 적지 않은 하청업체가 직원의 4대 보험금 등을 체납하며 위태롭게 업을 이어가고 있다.
② 대우조선해양이 감춘 갑질의 비밀…검찰의 면죄부
예산이 부족해서 기성(하도급 대금) 지급에 어려움
직영도 협력사의 요청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보상은 미흡
협력사와 하도급 대금 상호 합의 부재로 법적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음
- 대우조선해양 내부 문건 (2014~2018년)
뉴스타파는 2018년 공정위가 대우조선의 하도급 갑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5년치 내부 자료를 무더기로 입수했다. 대우조선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하도급 업체를 운영, 관리하며 작성한 대외비 자료와 사내 이메일 등이다.
여기에는 대우조선이 경영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하청업체에 터무니없이 낮은 하도급 대금을 지급했고, 또 이런 사실이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감춰왔던 정황이 적나라하게 들어 있다. 심지어 대우조선이 공정위 조사를 앞두고 과징금을 축소하기 위해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도 확인된다. 위법성을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공정위는 2019년 4월 대우조선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6개월 가량 수사를 한 뒤 “대우조선이 일방적으로 하도급 대금을 삭감하지 않았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뉴스타파는 대우조선 내부 자료를 분석해 검찰의 이 결정이 터무니없는 면죄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타파는 대우조선 내부 자료를 분석해 확인한 '대우조선의 불법적인 원가 절감 비법', '하도급 단가 후려치기 방법'을 영상을 통해 자세히 공개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이후 조선소 원하청 임금격차를 해소하겠다며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꾸렸다. 이 협의체를 통해 원청은 하청업체에 적정 하도급 대금을 보장하고, 하청업체는 원청의 대금 인상률만큼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도록 유도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핵심 당사자인 하청노동자들을 상생협의체에서 제외했다. 그러면서 이미 불법으로 드러난 ‘조선 3사’(대우조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의 악질적인 하도급 대금 갑질에 대해서도 단 한 마디도 지적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받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투쟁은 ‘불법’으로 낙인 찍으면서 이미 국가기관이 적발한 조선사의 불법에는 한없이 관대했다.
이런 엉터리 대책으로 과연 조선소를 떠난 수많은 숙련공을 다시 불러 들이고, 원하청간 임금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까.
뉴스타파 홍여진 sara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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