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구두약속한 간호법에 거부권 행사하나···여당은 의료법에는 ‘입장 없음’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이 27일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의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공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쥔 윤석열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국민의힘은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방침이다. 의료법에 대해선 특정한 입장을 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은 의료법에서 간호 인력 관련 조항을 독립시킨 법으로 간호사의 활동 영역과 처우 개선 조항을 담았다. 의료법은 의료인들이 금고 이상의 형사 판결을 받으면 일정 기간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이다.
국민의힘은 전날 의원총회에서 간호법의 거부권 행사를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여러 (보건의료) 직역들이 간호법을 반대하고 있다”고 거부권 건의 방침을 고수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간호법·의료법 표결 전 본회의장에서 집단 퇴장하면서 야당의 독단적인 법안 처리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법안이 정부에 이송된 후 보름 내에 해야 한다. 오는 5월 초 정부로 이송돼 5월 중순에 행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의 속내는 복잡하다. 거부권 행사로 감수할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대선 때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간호법 제정을 돕겠다는 취지로 말했고, 국민의힘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간호법 제정 필요성에 긍정했다. 대통령과 여당이 약속을 파기했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간호협회는 50만 회원이 간호대학 때부터 시작된 끈끈한 조직력을 자랑하는데 총선을 앞두고 이들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 간호사 출신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이날 당론과 달리 법안에 찬성 토론을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최 의원과 김예지 의원이 찬성 표결하는 등 당내 이견이 노출됐다. 윤 대통령으로선 양곡관리법에 이어 거부권을 남발한다는 비판도 부담이다.
정부·여당이 최근 거듭 간호협회를 만나 중재를 위해 노력하고, 간호사 처우 개선 대책을 내놓은 것은 거부권 행사 시 충격을 줄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간호법을 수용하면 좋고, 거부권을 행사해도 정치적으로 손해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의료법에 대해서는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교통사고 과실범이나 경제범도 면허를 박탈하는 것은 과하니, 의사 면허 취소 대상 범죄를 살인·강도·성폭행 등 강력범죄로 제한하자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원내수석은 이날 “모든 법(범죄)에 다 적용한 것은 아쉽지만 재의요구를 검토하기까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들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이날 야당들의 찬성 투표로 본회의에 부의됐다. 차후 열리는 본회의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 법안들을 상정하면 표결이 이뤄진다. 이 법안들은 공영방송별로 9~11명인 이사회를 21명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이사회 숫자가 늘어야 정치권 입김을 덜 받는다는 취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시민단체 출신 이사를 늘려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고 보기 때문에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확실시된다. 방송법 다음 순서로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이 본회의 직회부를 기다리고 있다. 국회에 여야 협치는 사라지고 ‘야당의 강행 처리 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관행처럼 자리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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