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행위로 자살 위험" 경고하는데, 군은 "약 먹으면 된다"

2023. 4. 2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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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5사단, '군 폭력' 피해자 부모에 "답답해" 피해자 탓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육군 5사단 일반전초(GOP) 부대에서 전입신병에 대한 상습적인 가혹행위가 일어났고, 소속대 간부들은 이를 방임하는 한편 항의하는 부모들에게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는 발언까지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22년 8월부터 "육군 제5사단 GOP에서 전입신병이 상습적 가혹행위, 폭언 등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라며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센터에 따르면 피해자 A이병(현재 일병)은 자대 전입 후 4개월여 간 이어진 괴롭힘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6개월 가까이 정신과 병동에 입원 중이다. 민간병원과 군병원 주치의들이 자살 위험 등 소견을 제시했지만 군은 A이병의 원대복귀를 결정했다.

A이병은 지난해 8월 말 경기 연천군 5사단 GOP부대의 상황병으로 배치됐다. 센터에 따르면 폭언 등 가혹행위는 A이병의 자대배치 직후부터 일어났다. 현재 만기 전역한 B상병이 업무미숙을 명분으로 A이병에게 상습적인 폭언 및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그러나 그는 통상 3~5주 기간이 소요되는 인수인계 기간을 2주로 줄였고, 특히 A이병이 업무 질문을 하면 "닥치고 기다려라"라는 등의 폭언만 쏟아내는 등 인수인계 작업 또한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속적인 가혹행위로 A이병은 공황증세에 시달렸다.

또한 B상병은 A이병으로 하여금 △자신의 후임이자 A이병의 선임에게 폭언을 하도록 지시 △외우지 않아도 되는 전화번호, 간부이름 등을 암기하도록 강요 △개인정비시간에 휴식, 독서, 사이버지식정보방 이용 혹은 다리를 꼬고 앉는 행위 등을 제한하기도 했다. 센터 측은 "(B상병이) A이병이 앉은 의자를 발로 밀치는 등 물리적 가해까지 했다"고도 밝혔다.

문제는 해당 부대의 소초장(소대장)이 상황을 알면서도 묵인, 오히려 가해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센터는 "소대장은 B상병이 폭언, 욕설하는 것을 보고도 묵인하였고, 제지조차 하지 않았다"라며 오히려 일부 가혹행위 상황에선 소대장이 나서서 "B상병을 거들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소대장은 지난해 9월경 전화통화를 통해 아들 A이병의 상황을 알게 되고, 이에 아들의 상황을 묻는 A이병의 부모에게는 "가르쳐주는 상병이 답답해한다"라며 B상병 편을 들고, A이병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아가 소대장은 A이병의 부모가 아들 면담을 위해 부대를 방문하자, A이병에게 "B상병이 전출 갔다고 말해주면 안 되겠냐" 제안하는 등 거짓말을 요구했다. 센터는 "A이병의 피해를 사건화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하려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센터에 따르면, 부모를 통해 A이병 문제가 드러나자 군은 조직적인 문제 축소 및 2차 가해에 나섰다. 부대의 중대장은 면담에서 부모에게 "A이병과 B상병을 모두 전출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후 A이병의 보직만 변경한 채 B상병에게는 별도의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A이병은 이후로도 B상병과 마주쳐 가며 공개적인 모욕·폭언 등 2차 가해에 시달렸다.

"육군의 이상한 후속조치"는 계속됐다. 부대는 A이병의 정신과 진료를 위한 청원휴가를 거부했다. A이병이 개인연가 중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폐쇄병동에 입원, 부모가 병가 신청을 위해 의무기록을 전달하자, 부대 행정보급관은 "이 정도면 데리고 와서 약 먹으면 될 것 같다"라며 복귀를 요구했다.

주치의의 반대로 당시 행보관의 복귀 권유는 무산됐다. 다만 센터는 "민간병원, 군병원 등 A이병이 거친 대부분의 병원들은 자살사고 등을 이유로 부대 복귀가 어렵다는 소견을 내놨다"라면서도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지상작전사령부는 2월과 3월 2회에 걸쳐 계속하여 현부심에서 '계속복무' 결정을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병영부조리, 부대 방치 등에 대한 5사단 군사경찰대의 조처도 미흡했다. A이병의 부모는 지난해 11월 A이병의 일에 대해 육군군사경찰실, 국민신문고, 국방헬프콜 등에 민원을 접수했는데, 5사단 군사경찰대대는 '민원조사' 명목으로 범죄혐의를 인식하고도 이를 수사로 전환하지 않다.

센터에 따르면 군사경찰대는 올해 "부모의 형사처벌 의사를 확인한 뒤에야 이를 수사로 전환하여 육군 수사단으로 기록을 이첩"했고, 이로 인해 가해자 B상병은 2023년 2월 아무런 수사 없이 전역할 수 있었다.

이에 A이병 측은 B상병을 상해죄 등으로, 중대장과 소대장을 직권남용 등으로, 사건을 맡았던 5사단 군사경찰 조사관을 직무유기로 고소한 상태다. 현재 B상병은 민간경찰에서, 중대장, 소대장, 조사관은 군사경찰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센터는 "이 사건은 부조리가 만연했던 GOP 부대에서 선임병이 후임병을 괴롭혔고, 피해자가 이를 신고했으나 쉬쉬하면서 피해자를 방치, 2차 피해까지 야기한 전형적인 군대 내 인권침해 사건의 단면을 보여준다"라며 "계속되는 사망 사건과 일련의 인권침해 사건을 보면 최근 군의 인권 감수성이 계속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한편 국방부는 이날 군인권센터 측의 기자회견으로 A이병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육군은 피-가해자를 분리했으나 이후 피해병사가 가해자의 사과와 직책조정 후 임무수행을 요청해 가해 병사의 생활관 및 보직을 변경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센터는 "피해자는 일관되게 피-가해자 분리를 요구하였으며 가해자의 사과와 직책조정으로 분리를 대신하겠다는 의사는 표명한 적이 없다"라며 "(가해자의 사과를 받고 사건을 끝내자는) 중·소대장의 요구를 강하게 거부하기 어려운 위치인 이병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을 두고 피해자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센터에 따르면 당시 중대장은 A이병에게 가해자가 아닌 A이병 본인의 보직변경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피해자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가해자의 사과와 직책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하자고 다시 요구했다.

당시 가해자는 A이병에게 "사과했다 치자"는 등의 발어만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2022년 육군 제5사단 GOP 가혹행위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소속대 간부들이 상황을 알고도 방관했고 피·가해자 분리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2차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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