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끝 왜 소공녀가 될까 [2030의 정치학]

2023. 4. 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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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스틸컷. CGV아트하우스 제공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집값은 꾸준히 오르더라고요." 은행 대출을 받으러 온 수남은 창구에 앉아 직원에게 푸념했다. 수남은 어렸을 때부터 성실했다. 집 구할 돈을 모으기 위해 몸 사리지 않고 일했다. 신문 배달부터 청소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시간이 없어. 잠은 나중에 자면 돼. 일을 더 늘려야 해." 하지만 수남이 버는 돈보다 집값은 더 빠르게 올랐고 수남은 일한 지 9년이 되던 해가 돼서야 1억4,000만 원의 대출을 받아서 작은 방을 구했다.

수남은 전세방을 열심히 돌봤다.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방을 잘 닦고 말렸으며 외식비를 줄이고 건강도 챙길 겸 마트에서 장을 봐다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려고 애썼다. 처음 얻는 자취방인 만큼 기분을 내기 위해 조명도 사고 카펫도 깔았다. 지난해 폭우가 쏟아진 날 다 버려야 했지만 말이다. 서울 도심 곳곳이 침수된 날 수남의 방도 속수무책으로 젖었다. 빗물이 반지하 방으로 밀려왔다. 그래도 수남은 다행인 편이었다. 반지하 방에 살다가 참변을 겪은 사람 가운데는 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이도 많았다. 그래서 수남은 참았다.

문제는 올해다. 이사를 가려고 하니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 주지 못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상황을 봐달라고 했다가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겼다. 집주인은 알고 보니 서울, 경기에 900채나 되는 집을 임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전세 사기를 당한 거다. 수남이 집을 구할 때 세상에는 부동산 열풍이 불었다. 무자본으로 집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부추겼다. 차곡차곡 저축하고 대출이 잘 풀리지 않을까 봐 걱정하고 가족에게 도움을 구할까 고민마저 성실했던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집 가격이 떨어지자 당장의 피해는 수남에게만 돌아왔다. 수남은 믿었다. 집을 보여 준 공인 중개사도, 집주인도, 돈을 빌려준 은행도, 나라에서 운영하는 보증 보험도. 하지만 누구도 책임지고 사과하거나 돈을 대신 받아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수남은 멍하니 거리에 서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걸린 정치인의 현수막은 태평할 정도로 변함이 없다. 빗물에 수남의 방이 젖었을 때도 전세 사기를 당했을 때도 그랬다. 정치는 '우리가 저기보단 낫다'는 말을 반복하는 거라고 수남은 여겼다.

수남은 가상의 인물이다. 도입부 설정만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수남에게서 가져왔다. 영화 속의 수남은 열심히 하면 행복해질 거라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했지만 현실은 성실의 미덕을 보답해 주지 않는 '이상한 나라'다. 수남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생계형 빌런으로 변하는데, 빌런이 되기도 어려운 현실의 수남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성실한 한국의 앨리스는 절망 끝에 소공녀가 된다.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월세도 오르고 담뱃 값도 오르자 과감히 집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나선다. 수남과 미소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이들이 겪는 일은 슬프게도 현실이다. 그러나 수남과 미소에게 현실 정치가 건네는 이야기는 빈약하다. 모든 정당이 스윙 보터인 청년 세대를 잡겠다고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떤 변화를 만들 건지 앞으론 어떤 집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약속하는 사람은 없어서다.

지금의 정치는 젊은 세대를 붙잡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상대편만 탓하는 기존 문법을 반복하며 'MZ세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우리에게 젊은 세대가 필요하다는 접근은 소비자 지갑을 열겠다는 기업의 방식일 수는 있어도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문제 해결사가 되어야 하는 정치의 태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은 수남과 미소가 내몰리지 않도록 지키는 정치가 필요하다. 우리 편이 되어 달라 호소하는 정치 말고 자연스럽게 편이 되고 싶은 정치를.

곽민해 뉴웨이즈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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