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천문학자의 새로운 시간 [임명신의 7차원 우주이야기]
편집자주
퀘이사와 블랙홀 등 온갖 천체를 품은 '우주'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대상이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우주에 대한 탐구 작업과 그것이 밝혀낸 우주의 모습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세계 오지도 즐거운 천문학자들의 지적 탐구
IT와 AI 발달, 천문학도 원격 관측이 대세
새삼 그리워지는 맨눈 천문관측의 소중함
천문학자들이 실제로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하는 시간은 일 년 중 얼마 되지 않는다. 연구용 망원경은 고가의 장비라 천문학 관측 연구는 천문학자 여럿이 그런 관측장비를 나누어 쓰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천문대가 있는 산에 올라가서 관측하는 날은 평균적으로 연간 7일 내외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수고를 하면서 먼 곳에 있는 천문대로 갈 때면 항상 설렌다. 해외여행을 즐겁게 떠나는 기분이랄까.
천문대는 하늘에 있는 별을 잘 보기 위해 날씨가 맑고 고도가 높은 곳, 그러니까 남미 칠레의 안데스산맥 고지대, 미국 애리조나주 사막 산지, 우즈베키스탄 산악지대 등 듣기만 해도 '오지'라는 느낌이 오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천문대로 가면 맨 먼저 하늘을 가리는 구름이 있는지, 그다음에는 땅에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지 보게 된다. 풀들이 자라고 있는지 보는 이유는 풀들이 최근 그 지역에 비가 왔었는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문대 주변에 풀들이 무성하게 있으면 "아, 이번에는 흐리거나, 비 때문에 관측하기 어렵겠구나"라고 속으로 탄식하곤 한다. 천문대가 있는 곳이 고도 4,000m가 넘는 경우에는 산행 중 중간지점에서 적어도 하룻밤을 묵으면서 고도 적응을 꼭 해서 고산병에 걸리지 않도록 한다.
천문대에서는 밤이 긴 겨울이면 오후 늦게 관측을 시작하여 늦은 아침에 관측을 끝낸다. 그리고 점심시간 전후에 잠시 눈을 붙였다 다시 오후 2, 3시경 기상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나마 날씨가 좋으면 다행이지만 날씨가 좋지 않으면 시간을 허송세월하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그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천문대에 가는 것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름다운 밤하늘을 실컷 보고 지금까지 아무도 보지 못한 수십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오는 우주의 신호를 보면서 우주의 신비를 마주할 수 있어서이다. 천문대에서 매일 일몰과 일출을 즐기거나 다른 관측자들과 잠시 쉬는 시간에 포켓볼을 치며 우주에 대해서 논하는 기회는 관측하는 천문학자에게 덤으로 주어지는 혜택이다.
그렇지만 이런 천문학자들의 낭만적인 관측 기회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이유는 컴퓨터 기술의 발달과 관측의 전문화에 있다. 많은 천문대에서 상주 전문인력이 기상 상황에 맞는 관측 프로그램을 수행하여 관측 시간 사용의 효율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각 연구자가 멀리 천문대까지 가는 시간과 비용도 아낄 수 있다. 요즘에는 한술 더 떠서 자기 연구실에 앉아 있으면서 원격으로 인터넷을 통해 망원경을 조작하거나 심지어 망원경이 로봇처럼 알아서 주어진 대상을 관측해 주기도 한다. 얻어진 관측자료는 거의 실시간으로 고속 인터넷 선으로 연구실에 전송된다.
최근 천문관측 자료는 용량이 크다 보니 자동으로 자료 분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사람이 하는 수고를 대폭 줄이고 있다. 그렇게 분석된 막대한 자료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추가로 분석된 후 여러 검증 과정을 거치고 우리가 신문에서 접하는 기사에 나오는 아름다운 과학적인 결과물이 된다. 그래서 현대 천문학자들은 밤에 별을 보는 일보다 연구실에서 컴퓨터 작업을 통해 중요하고도 미세한 신호를 빅데이터 속에서 찾아내는 고급 컴퓨터 프로그래머 일을 주로 한다.
실제 국내외에서 천문학자들이 프로그래밍 개발과 과학적 분석력을 바탕으로 대기업에 취업하여 활약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났다. 천문학을 하면 컴퓨터 관련 일로 밥 벌어먹을 수 있다는 시대가 왔으니 격세지감이다. 그러나 요즘 천문학 연구를 하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천문대에서 우주를 직접 대하며 밤하늘의 신비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그리워진다.
임명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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