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일어난 일” 대통령 발언의 무게

조기원 2023. 4. 2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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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에 앞서 <워싱턴 포스트> 와 한 인터뷰 내용을 읽으며 대통령 발언의 무게를 곱씹는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나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뭔가 절대 불가능하다거나,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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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모폴리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코즈모폴리턴] 조기원 | 국제뉴스팀장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에 앞서 <워싱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 내용을 읽으며 대통령 발언의 무게를 곱씹는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나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뭔가 절대 불가능하다거나,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무릎을 꿇는다”는 일본이 100년 전 일 때문에 계속 사과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해 쓴 표현으로 읽힌다. 그런데 사죄나 사과가 필요하다 또는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피해 당사자의 몫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지만 피해자를 대신해 사과 필요 여부까지 판단할 권한은 없다.

사과가 아니라 “일본이 무릎을 꿇는” 일방적 양보를 요구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해석해야 하나 싶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이 일본에 무릎을 꿇으라고 요구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을 통해 한국은 일제 식민지배 시기 피해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타협을 계속해왔다. 더구나, 현 정부가 지난달 6일 강제동원 피해 대법원 배상판결 문제와 관련해 내놓은 해결책은 타협을 넘어선 일방적 양보였다. 현 정부는 일본 피고 기업들이 내야 할 배상금을 국내 재단이 대신 내는 ‘제3자 변제’를 해결책으로 발표했고, 일본이 양보한 것은 전혀 없다. 일본 정부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1998년 10월에 발표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일본 정부는 지난 11일 공개한 ‘외교청서’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양보’만 명시하고, ‘과거 일본 역대 정부 담화 계승’ 부분은 뺐다.

윤 대통령이 100년 전 일어난 일을 언급하니 기억나는 것이 있다. 올해는 일본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일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다. 1923년 9월1일 간토대지진 뒤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같은 헛소문이 퍼지며 자경단과 군이 도쿄와 요코하마, 지바 등 간토 곳곳에서 조선인을 학살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고 진상조사를 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뒤 재일조선인들과 일부 일본 시민들은 간토 곳곳에서 조선인 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어왔다. 1973년부터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추도제가 대표적이다. 극우 인사로 꼽히는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를 포함해 역대 도쿄도지사들은 해마다 이 추도제에 추도문을 보내왔다. 하지만 일본 사회 우경화가 강화되면서 2017년부터 고이케 유리코 현 도쿄도지사는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 요코아미초공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제를 주도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해마다 추도회 때 이런 말을 자주했다. 역사가 “세월 속에 풍화되어 잊히고 있다. 망각은 다시 악몽을 부를 위험이 있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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