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도쿄 로봇카페 순례기

한겨레 2023. 4. 2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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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나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내 로봇 앞으로 가져갔다. 그러다 잠깐 멈칫했다. 이 로봇이 그저 로봇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했기 때문이었다. 이 카페에 있는 로봇은 모두 누군가의 분신(아바타)이었다. ‘파일럿’이라 불리는 장애인들이 일본 각지에서 또는 해외에서 접속해 로봇을 조종하고 있었다.
일본 도쿄 시부야의 로봇 카페에서 소프트뱅크사의 로봇 ‘페퍼’가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전치형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두주 전쯤 로봇 문화를 연구하는 몇명이 모여 일본 도쿄 로봇카페 순례에 나섰다. 첫 목적지인 시부야의 로봇카페에서는 소프트뱅크사의 로봇 ‘페퍼’가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예약 손님들이 앉은 테이블마다 페퍼가 한대씩 배치돼 있었다. 아이 몸집만 한 페퍼가 손님들을 위해 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주문은 인간 직원이나 큐아르(QR)코드를 통해 할 수 있었고, 음식 나르는 일은 서빙 로봇이 했다. 페퍼는 테이블 바로 옆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췄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혼자 앉은 손님도 있었고 동호회 모임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연구 자료를 수집한다며 페퍼 사진을 잔뜩 찍었지만, 페퍼의 춤과 노래로 흥이 나지는 않았다. 손님이 없는 테이블에서 고개를 숙인 채 대기 중인 페퍼는 왠지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일본 도쿄 시부야의 로봇 카페에서 소프트뱅크사의 로봇 ‘페퍼’가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전치형

두번째로 찾은 카페에는 바리스타 로봇이 있었다. 컵을 꺼내고, 원두를 갈고, 물을 붓는 등 인간 바리스타의 동작을 하도록 설계된 로봇은 긴 팔을 휘두르며 바삐 움직였다. 얼굴이라고 부를 만한 스크린 위에는 토끼 귀 모양의 머리띠가 얹혀 있었다. 그러나 키오스크를 통해 우리가 주문한 카페라테는 나오지 않았다. 주문을 로봇에 전달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로봇은 멈춰 섰고, 문제를 해결하러 인간 직원이 둘이나 출동하더니 결국 돈을 돌려줬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열심히 담았으나, 로봇 커피는 마시지 못한 채 카페를 떠나야 했다.

일본 도쿄 시부야의 로봇 카페에서 바리스타 로봇이 커피를 만들고 있다. 사진 전치형

오후 4시께 들른 마지막 목적지에는 “아바타 로봇 카페”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페퍼보다 조금 작은 로봇이 입구에서 손님을 맞거나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말을 걸었다. 카페 한가운데 예약석에 앉은 손님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귀여운 소형 로봇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양에서 온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우리처럼 예약 없이 온 손님들은 로봇 없는 일반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인간-로봇 상호작용의 현장을 참관할 수 있었다. 로봇과 얘기할 때는 다들 조금 큰 목소리로 말해서 우리에게 대화 내용이 들릴 정도였다.

커피를 주문하러 입구 근처로 갔을 때 비로소 가까운 거리에서 로봇을 봤다. 나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내 로봇 앞으로 가져갔다. 그러다 잠깐 멈칫했다. 이 로봇이 그저 로봇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했기 때문이었다. 이 카페에 있는 로봇은 모두 누군가의 분신(아바타)이었다. ‘파일럿’이라 불리는 장애인들이 일본 각지에서 또는 해외에서 접속해 로봇을 조종하고 있었다. 예약석 손님들과 대화하는 것도 파일럿들의 주요 임무였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던 로봇의 파일럿은 선천성 근육병을 앓으면서 인공호흡기와 전동휠체어를 사용한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허리를 조금 굽혀 서툰 일본어로 인사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 정도를 덧붙인 것 같다. 그는 내게 좋은 시간 보내라고 답해줬다.

일본 도쿄 니혼바시의 ‘아바타 로봇 카페’에서 장애인 파일럿이 원격 조종하는 로봇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전치형

카메라를 꺼내던 내 손은 왜 잠시나마 멈칫했을까. 로봇의 생김새는 장애인 파일럿의 얼굴이나 몸을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카페를 배경으로 하얀 로봇을 찍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지구 어딘가에 있는 파일럿이 로봇을 통해 나와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카메라를 든 손을 여느 때와 다르게 움직이게 했다. 나는 마치 로봇에게 촬영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어색한 자세를 하다가 옆에 붙은 “사진 촬영 오케이”라는 문구를 보고서야 안심하고 셔터를 눌렀다. 오전에 만난 페퍼와 바리스타 로봇을 향해 누구의 동의도 받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대던 내 모습과는 달랐다.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장애인 파일럿과 내가 그날 그 카페에서 정말 만났다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멋지게 포장해 보려 해도 그저 카페 직원과 손님 사이의 대면 정도인 일이다. 나는 연구를 핑계 삼아 아바타 로봇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 이상은 아니었다. 집 밖 활동이 어려운 장애인이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과 대면하는 것이 서로에게 미칠 영향에 관한 윤리적, 규범적 판단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카메라를 들어 올리는 내 손이 멈칫하던 그 느낌은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이것이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고 써 붙인 앞차를 볼 때 느낌과 얼마나 다른지는 좀 더 생각해 보려 한다. 로봇 앞에서 공손해지는 법을 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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