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AI 어디까지 왔나...인공호흡기 제어하고 위암도 미리 예측 [긱스]
의료 인공지능(AI)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을까요. 국내에는 아직 의료 시장을 장악한 '대박템'은 없지만, 머지않아 AI가 의료 현장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의료 AI 기술을 선도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만나봤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된 음성인식 인공지능(AI) 기업 뉘앙스는 영상 판독 음성을 인식해주는 서비스로 미국 방사선 전문의 75%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뉘앙스의 헬스케어 부문 매출만 1조원이 넘는다.
국내에는 이런 헬스케어 분야 AI 소프트웨어의 '대박템'은 아직 없다. 하지만 의료 현장도 바뀌고 있다. AI로 응급환자의 상태를 신속하게 판단하거나 중환자실의 인공호흡기를 알아서 제어하는 기술들이 개발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용성 확보냐, 수가 인정이냐
배웅 카카오브레인 헬스케어 최고책임자(CHO)는 26일 "AI로 영상 판독 음성을 인식하는 뉘앙스는 보험 수가 없이도 사용성이 충분히 확보되면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카카오벤처스가 서울 강남구 루닛스퀘어에서 개최한 '디지털 헬스케어 데이'에 기조 발표자로 나선 배 CHO는 "고객 사용성에 집중해 현실 세계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보한 다음에 수가를 고민하는 게 순서"라며 이같이 말했다.
챗GPT가 나오면서 초거대 AI를 활용한 헬스케어 분야 도약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배 CHO는 "그동안 데이터를 모으고 라벨링하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 챗GPT가 나오면서 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초거대 AI가 인간처럼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며 학습해 기존 워크플로 안에서 피드백이 오가며 데이터 선순환이 이뤄지면 노력(시간과 비용)이 최소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카오브레인은 헬스케어 분야에서 AI 영상의료진단(CAD) 서비스와 AI 항체신약설계 플랫폼에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배 CHO는 "AI가 흉부 엑스레이 사진의 초안 판독문을 의사에게 제공하고 의사가 피드백을 주면서 AI를 학습시켜 데이터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항원을 넣으면 다양한 항체가 나오는 플랫폼을 통해 기존 항암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치원 카카오벤처스 상무는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이 수가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효과성을 입증해야 한다"며 "환자의 선별·진단·동반 진단·치료·관리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보면 치료 단계에 근접할수록 가치 입증이 쉽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벤처스는 2021년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대 병원 전공의 출신의 김 상무와 정주연 심사역을 영입했다. 지난 2년간 투자한 헬스케어 기업은 20여곳에 이른다.
이날 행사에는 카카오벤처스가 투자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가운데, 코넥티브, 프리베노틱스, 알피, 딥메트릭스, 뉴로엑스티 등 창업자들이 직접 참석해 의료 AI 기술력과 회사 비전을 설명했다.
코넥티브, 인공 관절 로봇수술 '세대교체'
코넥티브는 AI 기반 인공 관절 로봇 수술에 집중하는 기업이다. 1년에 무릎관절 수술만 500번 넘게 하는 노두현 서울대 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수술하면서 겪은 문제를 직접 풀기 위해 창업했다.
노 대표는 "현재의 수술용 로봇은 깎는 기구에 가깝다"며 "오히려 사람이 직접 하는 것보다 로봇 수술을 하면 15분 정도 시간이 더 걸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코넥티브는 엑스레이 분석부터 진단 치료까지 전 주기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해 로봇 수술 전, 후 과정에 사람이 손으로 했던 비효율을 제거했다. 코넥티브의 수술 설계 기술을 활용하면 로봇 인공관절 수술 시간을 줄이고 수술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AI 기반 스마트 로보틱스는 상용화한 곳은 아직 없다. 노 대표는 "내비게이션 대신 비전 AI를 사용하고 투입 의사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발하고 있다"며 "5~10년 안에 AI 기반 스마트 로보틱스로 세대교체를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리베노틱스, 의사보다 위암 더 잘 잡는 AI 엔진
프리베노틱스는 내시경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암과 선종뿐만 아니라, 암 전 단계 병변인 장상피화생을 잡아내는 진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 코리아에서 전략 기획 담당 상무를 지냈던 장수연 대표가 서울대 병원 교수진, LG전자 AI 연구원 출신 이준우 CTO와 공동 창업했다.
장 대표는 "우리가 개발한 엔진의 암과 선종 진단 정확도는 95%, 장상피화생은 80% 이상의 정확도를 확보했다"며 "일반 의사들의 진단 정확도인 20~70%보다 훨씬 우월한 엔진"이라고 강조했다.
프리베노틱스의 진단 정확도가 높은 이유는 '좋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서울대 병원에서 숙련 의가 4년간 모은 6000건 이상의 장상피화생 이미지로 엔진을 만들었다"며 "직접 조직을 검사한 내용을 가지고 데이터를 정제해 만든 AI"라고 강조했다.
프리베노틱스는 정확한 암 진단은 물론 암으로 번질 수 있는 상태나 질환을 예측할 수 있도록 돕는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의사 판독 소견뿐만 아니라 이전 내시경과의 비교를 통한 추적관리를 제공한다.
알피, 응급 환자 심전도 분석에 특화
알피는 스마트폰만으로 예상 질환을 감별하는 심전도(ECG) 분석 서비스 'ECG 버디'를 개발했다. 구조대 및 응급실 등 응급 환자를 만나는 의료인이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의료 AI 서비스다. 김중희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창업한 회사다.
김 교수는 "세계인 32%가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다”며 “가장 무서운 응급 질환”이라고 말했다. 이에 알피는 응급 상황에서 심전도 사진만으로 중증도, 허혈, 심기능 등 10개 주요 응급질환 바이오마커를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ECG 버디를 개발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개발한 AI가 의사보다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응급실 현장에서 초음파 데이터와 성능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왔다"고 강조했다.
알피는 올해 ECG 버디의 확증 임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알피는 심전도 종류뿐만 아니라 심부전, 급성심근경색 및 다양한 응급 심혈관 질환 가능성을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통해 예측하는 기술, 흉부 방사선을 분석해 폐렴 유형까지 추정하는 흉부 방사선 분석 AI 등도 개발하고 있다.
딥메트릭스, 챗GPT보다 더 많은 데이터로 강화학습
딥메트릭스는 강화학습을 통해 의료기기에 활용할 수 있는 AI 소프트웨어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중환자실 인공호흡기를 제어하는 자율주행 AI 모델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딥메트릭스는 구글 리서치를 거친 송현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창업한 회사다. 송 대표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가 가장 중요한 생명 연장 장치이지만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AI를 접목한 인공호흡기로 적시에 의료 행위를 도와 환자에게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딥메트릭스의 인공호흡기 제어 AI는 블랙박스 기반 딥러닝이 아닌 화이트박스 기반 강화학습으로 개발됐다. 송 대표는 "조합을 통해 구불구불한 경계를 잘 찾아내는 딥러닝 방식은 인공호흡기 제어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조합 최적화라는 방법을 통해 AI가 의사의 행동을 가장 잘 따라 할 수 있도록 화이트박스 의사결정 모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병원과 공동 연구과제를 통해 고해상도 데이터를 수집한 점도 강조했다. 송 대표는 "챗GPT가 570기가바이트 규모로 학습했는데 우리가 모은 데이터는 700기가바이트에 이른다"며 "AI가 서울대 병원 전문의 수준으로 인공호흡기를 제어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딥메트릭스는 올해 50억원 규모로 시리즈 A 라운드를 진행할 예정이다.
뉴로엑스티, MRI 촬영만으로 치매 치료제 동반 진단
뉴로엑스티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으로 알츠하이머 치료 적합 환자를 선별하는 AI 기반 영상 동반 진단 기술을 개발했다. 값비싼 양성자 방출 단층촬영(PET) 대신 MRI 촬영 한 번으로 알츠하이머 바이오마커 기반 진단부터 치료제 적합성 판정, 부작용 예측까지 모든 가능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뉴로엑스티는 뇌 영상 분석 기술 전문가 성준경 고려대학교 바이오의공학부 교수를 주축으로 설립된 지 1년 된 회사다.
아밀로이드 표적 약물이 미국 식약처(FDA) 승인을 받으며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시대가 열렸지만, 인지기능 개선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다. 성 대표는 "아밀로이드가 뇌세포를 죽인다고 생각했는데 타우단백질이 쌓이면서 뇌세포가 죽는 것이 연구 결과 발견됐다"며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MRI 영상으로 분석해 치매 치료제에 적합한 환자를 선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뉴로엑스티의 동반 진단 기술을 통해 제약사는 임상시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시장에 출시됐을 때 실패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식약처 인허가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다. 성 교수는 "영상만으로 동반 진단하는 시도가 이전에 없었기 때문에 인허가 과정에서 시간만 지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뉴로엑스티는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해 개념검증을 하고 미국에서 입증자료를 확보하는 쪽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는 "글로벌 제약사도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하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바텀업으로 접근해서는 불꽃이 꺼질 수 있다"며 "탑다운으로 뚫어야 일이 조금이라도 진행된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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