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마춤법’ 성립사

한겨레 2023. 4. 2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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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든 ‘한글 목활자 소자’.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

[크리틱]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오누이가 연로한 부모를 모시고 식당에 들어간다. 자리를 잡은 가족 모두 고개를 숙여 메뉴판을 살피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이 표정은 메뉴에서 기대되는 음식 맛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모두 메뉴판에서 잘못 표기된 메뉴를 잡아내고 득의양양한 것이다.

오래전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에서 이 “교열 강박”에 사로잡힌 가족 이야기를 읽고 웃음을 터뜨리다, 나 또한 어디서나 맞춤법이 틀린 표기는 어김없이 눈에 쏙쏙 박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먹물”인 이상 긴 세월 시험과 읽기를 통해 내재화된 잣대가 자동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래 봐야 전문 교열자 손에 걸리면 새빨개지는 글을 쓰는 수준임에도 심정적으로는 늘 내가 맞춤“법”의 검찰 쪽이라고 생각해온 듯했다. 표기 오류에서 가장 희화화되는 발음대로 표기하기, 가령 “조타”를 보면 그게 그걸 쓴 사람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지 왜 표음문자라는 한글에서 “조타”가 아니라 “좋다”가 맞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까다롭기는 하지만 그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병문은 <‘한글 마춤법 통일안’ 성립사를 통해 본 근대의 언어사상사>(2022)에서 내가 느끼던 이런 “‘자연’은 정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숱한 의식적 노력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망각되었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그러한 ‘자연’”이라고 말한다. 한때는 “조타”가 더 자연스러웠으나 이것이 인위적으로 “당대인들에게는 낯설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했던” “좋다”로 정착해 결국 이게 자연스러워졌다는 뜻이다. “~다”라는 언문일치체와 마찬가지로 맞춤법도 현재는 기원이 망각된 셈이다.

언문일치체는 맞춤법의 전제이기도 했다. 김병문은 언문일치체가 “구어에서라면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인 (…) 변이와 변종이 말끔히 사라진 균질적인 문장”이며 이런 “균질적인 언어는 물론 표준어의 설정, 기본적인 문장작법의 통일과 같은 근대 국민국가 단위의 언어규범이 작동한 결과”라고 본다. 그리고 “언어규범화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것이 (…) 표기법의 통일”이라면서 1905년 지석영의 <신정국문>에서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에 이르기까지 그 기원과 역사를 다룬다. <통일안> 총론에 나오고 또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표준말을 그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이라는 간단해 보이는 규칙이 성립되고, 난해함 때문에 “상당한 문식이 있는 신사와 부녀가 돌연 문맹이 되어버리”는 표기법이 숱한 논쟁 끝에 정착하는 역사다.

여기에서 도드라지는 인물은 주시경으로, 그는 “귀로 들을 수 있는 구체적인 소리가 아니라 추상적인 층위에 있는” 본음(즉 “조”타가 아니라 “좋”다)을 국문 표기의 기본으로 삼고, 이 본음으로 이루어진 추상적인, 누구에게나 “동일한 국어”를 상정한다. 나아가 이런 표기 원리가 우리를 “국어문법의 사상으로 인도”한다고 주장한다. 김병문은 주시경의 이런 도약, 그리고 그가 뿌린 씨앗이 <통일안>으로 열매 맺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언어적 근대에 진입했다고 본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근대적 “국어”가 우리말의 종착점일 리는 없다. 실제로 김병문은 <통일안> 백주년이 멀지 않은 시점에 서서 근대 이후까지 내다보며, 근대 언어사상의 한 성취인 균질화된 추상적 표준어가 경제적 근대의 추상적 교환가치처럼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상황, 규범에서 벗어난 비표준적 언어가 규격에서 벗어난 욕망이나 꿈과 더불어 소멸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그런 면에서 이런 전일적 지배가 만들어낸 ‘자연’이란 환각이 사실은 만들어진 것임을 밝혀내고, 따라서 새로 만들 수도 있는 것임을 드러내는 게 이 책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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