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진화를 선택한 인류…왜?
[김상균의 메타버스]
[김상균의 메타버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작년까지 메타버스에 불붙었던 인류의 관심이 인공지능(AI)으로 옮겨갔다. 21세기 들어 인류가 급진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인공지능이나 메타버스 외에도 다양하다. 첨단 기술들이 서로 그물처럼 얽혀서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개별 기술의 특성과 단기적 영향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기술에 담긴 거시적, 진화적 의미를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인간을 기준으로 보면, 이런 기술들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확장하고 있다. 생명공학, 나노기술, 사물인터넷, 로봇은 육체를 확장하는 기술이다.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메타버스는 정신을 확장하는 기술이다. 필자는 인류가 이렇게 기술을 통해 인간의 역량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인공진화라고 판단한다. 진화 앞에 인공을 붙이는 것이 기존 과학의 시각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인간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전자 장치나 약물 등을 활용해서 인간의 몸이나 마음에 손을 대는 시도가 자연의 진화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진화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형질을 가진 유기체가 생존과 번식 가능성이 커져, 그 유리한 형질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포식, 자원 경쟁, 기후와 같은 자연환경의 압력에 의해 주도된다.
그런데 인류는 자연선택에 의해 서서히 진행되는 자기 종(種), 사피엔스의 진화를 답답해하는 듯하다. 그래서 인간의 선호와 목표에 따라 자기 진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이런 인위적 선택을 통한 인공진화는 자연선택의 비지시적인 과정에 비해 더 직접적이고 의도적이다. 인공진화를 통해 인류의 마음, 관계, 행동 모두가 어딘가를 향해 초월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구조, 학습과 노동, 그리고 소비환경 등이 급변하고 있다. 지난 200년보다 더 큰 변화가 다가올 10년 동안 펼쳐질 것이다. 이런 급가속이 발생하리라 믿기 어려울 수 있으나, 이미 지난 역사와 현재 상황이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인류 역사를 30만년이라고 얘기하지만, 기술과 경제적 측면만을 놓고 보면, 최근 수백년간 발생한 변화가 수만년 시간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 2천년 동안 세계경제의 총 국내총생산(GDP)을 살펴보면, 서기 1~1700년까지 1700년 동안 증가는 3.5 배에 불과했으나, 1700~2000년까지 300년 동안 9800배 증가했다. 최근 필자 주변에는 아침에 눈 뜨기가 두렵다는 농담을 하는 연구자, 교수가 적잖다. 잠든 사이에 어떤 신기술이나 제품이 튀어나올지 몰라서 두렵다는 이야기인데, 이를 싱거운 농담으로 치부할 상황이 아니다. 최근 서너달 사이 등장한 인공지능 서비스들을,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향후 5~10년 뒤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인류는 그 끝을 짐작하기 어려운 첨단 기술을 통해 사피엔스의 육체와 정신을 확장하며 인공진화기에 접어들었다. 지구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사피엔스의 진화는 궁극적으로 지구, 모든 생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인류가 이제까지 환경과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놓고 볼 때 결코 과장된 예측이 아니다. 기술을 통한 사피엔스의 인공진화는 결국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함께 변화해가는 공진화의 단계로 몰아가고 있다.
인류는 무엇을 위해 이런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을 벌이고 있을까? 자연에서 종의 일차적인 목표는 생존과 번식이며, 그 어떤 고유한 의미나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인간은 가치, 신념, 열망으로 형성되는 개인적, 집단적 의미와 목적을 찾고자 한다. 목표만이 존재하는 자연 속에서 인간은 목적을 찾는 존재이다. 더 거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닌, 목표 뒤에 가려진 목적을 찾기 위해 인류는 인공진화를 선택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인류 문명의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이유로 인공진화에 동참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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